[조선일보 제공] 갈 곳 없는 시중 부동자금이 지방 대도시의 아파트 분양시장으로 급속히 몰려들고 있다. 이에 따라 대구, 부산 등지의 인기 아파트에는 불과 하루 동안 2만여명이 청약, 100대1이 넘는 사상 유례없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또 모델하우스 주변은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원정 온 ‘떴다방’(이동 중개업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수도권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분양권 전매(轉賣)가 금지된 반면 지방은 계약만 하면 분양권을 사고 팔 수 있어 단타(短打) 매매가 가능하기 때문. 여기에 지방의 경우 3~4년 동안 아파트 공급이 없어 상대적으로 주택 수요도 많은 편이다. ◆ 대구,부산 등 ‘묻지마 청약’ 확산 =지방의 아파트 청약 열기는 정부의 ‘9·5대책’ 이후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실제로 9·5대책 이전인 지난 2일 대구에서 분양된 ‘시지푸르지오’ 아파트는 전체 362가구에 1484명이 청약, 평균 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그나마 일부 평형은 1순위에서 미달됐다.
하지만 지난 17일 유림건설이 대구 범어동에서 공급한 ‘노르웨이숲’(437가구)은 7500여명의 청약자가 몰리며 평균 17.5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날 모델하우스 주변에는 20~30여개의 파라솔이 등장했고, 노골적으로 분양권 전매를 부추기는 ‘떴다방’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지난 25일 롯데건설과 화성산업이 대구 황금동에서 선보인 ‘캐슬골드파크’는 무려 2만2000여명이 청약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32평형은 135가구 모집에 1만6789명이 몰리며 13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IMF 이후 대구에서 분양된 일반 아파트 가운데 최고 경쟁률. 롯데건설 심영철 소장은 “태풍 영향과 경기 침체 등으로 청약률이 이렇게 높을 줄은 예상못했다”면서 “실수요자뿐만 아니라 전매를 노린 투자자들도 많이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날 분양한 부산 동래의 ‘SK뷰’ 아파트도 평균 6.9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전 평형이 마감됐다. 이 때문에 SK건설측은 당초 예정한 2, 3순위 청약일정을 부랴부랴 취소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갈 곳 없는 부동자금 지방으로=전문가들은 지방의 청약과열 원인으로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수도권은 분양권 전매 금지, 재건축 규제 등 각종 투기대책이 집중되면서 사실상 아파트 투자로 수익을 내기가 힘들어졌다. 반면 지방은 여전히 재건축 규제가 없고, 분양권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여기에 주식시장이 침체를 거듭하면서 마땅한 투자상품이 없어지자 ‘큰손’과 ‘떴다방’ 등 투기세력까지 지방으로 눈을 돌리면서 청약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 유림건설 황성욱 기획팀장은 “지방 대도시는 IMF 이후 주택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면서 “잠재 수요가 많은 만큼 인기 지역에서는 청약 열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세중코리아 김학권 사장은 “지방에서도 이미 인기 지역은 평당 분양가격이 1000만원에 육박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면서 “단기 차익만을 노린 투자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