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사망]도망자로 막내린 `42년 철권통치`

`최장기 집권자` `중동의 미친개`로 불린 카다피
혁명에서 독재로..폭력과 부정으로 점철
  • 등록 2011-10-20 오후 10:47:03

    수정 2011-10-20 오후 10:47:03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혁명가에서 독재자로, 그리고 도망자로, 폭력과 부정부패, 기행으로 점철됐던 중동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사진)가 비참하게 삶을 마감했다.

지난 1969년 27세의 어린 나이에 대위 신분으로 권력을 손에 쥔 카다피는 청년 장교들과 함께 무혈 쿠데타에 성공, 혁명평의회를 구성하고 스스로 의장에 올랐다. 왕정을 폐지하고 리비아아랍공화국을 선포한다.

이후 영국군과 미군이 철수하자 석유산업을 포함한 주요 산업을 국유화시키고 외국인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우며 한때 `중동의 체 게바라`로도 불렸던 그였지만 곧바로 권력욕을 드러낸다.

1977년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 체제를 선포하고 `인민 직접 민주주의의 구현`을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헌법을 폐기하고 독재를 시작했다. 국유화한 산업들로 자신의 배를 불리고 7남 1녀, 총 8명의 자식들을 국가안보 보좌관 등 요직에 앉히면서 재산도 부정적으로 축적했다.

이같은 점들로 인해 통치 내내 서방국가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카다피는 국제적 테러와 폭력으로 악명을 떨쳤다. 1980년대 이후 미군의 폭격을 비롯한 암살 위협만 20여차례 경험했다.

카다피는 1985년 12월 로마와 빈에서 동시에 발생한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돼 궁지에 몰렸고, 이듬해에는 독일 미군출입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로 미·영 연합군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보복 공습을 받아 입양한 딸을 잃기도 했다.

카다피는 또 온갖 기행과 돌발발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외국 방문 때 상대국의 반대에도 천막을 설치해 숙소를 써온 카다피는 `우크라이나 출신 금발 간호사 없이는 다니지 못한다`는 소문까지 날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고, 15분간의 유엔 연설에서 90분 이상 발언하기도 했고 난데없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찬양하는 등 황당 발언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같은 행보로 `현존하는 최장기 독재자`, `중동의 미친개`로 불렸던 카다피가 비극적 최후를 맞으면서 철옹성과 같던 리비아의 독재체제도 그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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