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영국군과 미군이 철수하자 석유산업을 포함한 주요 산업을 국유화시키고 외국인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우며 한때 `중동의 체 게바라`로도 불렸던 그였지만 곧바로 권력욕을 드러낸다.
1977년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 체제를 선포하고 `인민 직접 민주주의의 구현`을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헌법을 폐기하고 독재를 시작했다. 국유화한 산업들로 자신의 배를 불리고 7남 1녀, 총 8명의 자식들을 국가안보 보좌관 등 요직에 앉히면서 재산도 부정적으로 축적했다.
카다피는 또 온갖 기행과 돌발발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외국 방문 때 상대국의 반대에도 천막을 설치해 숙소를 써온 카다피는 `우크라이나 출신 금발 간호사 없이는 다니지 못한다`는 소문까지 날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고, 15분간의 유엔 연설에서 90분 이상 발언하기도 했고 난데없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찬양하는 등 황당 발언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같은 행보로 `현존하는 최장기 독재자`, `중동의 미친개`로 불렸던 카다피가 비극적 최후를 맞으면서 철옹성과 같던 리비아의 독재체제도 그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