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풀씩 베일 벗는 카를로스 곤의 영화같은 일본 탈출기

숨구멍 뚫린 악기상자 숨어…X레이 검사 없이 세관 통과
탈출 과정 전면서 드러나는 용의주도함
곤, 일본 사법체계 부당함 고발 영화 만들지 관심
8일 기자회견에 쏠린 눈…탈출 과정 밝힐지 주목
  • 등록 2020-01-06 오전 11:41:05

    수정 2020-01-06 오후 1:27:53

카를로스 곤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카를로스 곤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의 ‘일본 탈주극’ 전모가 한꺼풀씩 베일을 벗고 있다. 새로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일본은 물론 전세계가 그 주도면밀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그의 탈주극은 ‘진짜’ 영화로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5일(현지시간) 외신 및 일본 언론 보도들을 종합해보면 곤 전 회장은 혼자 자택을 빠져 나와 일본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출국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해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한 뒤 프랑스 여권을 제시, 합법적으로 입국했다.

일본, 터키에서 발표된 수사 결과, 또 다양한 외신들의 취재 결과에서 곤 전 회장이 얼마나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탈출을 계획했는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숨구멍 뚫린 악기상자 숨어…X레이 검사 없이 세관 통과

일본 경찰이 곤 전 회장이 머물렀던 집의 현관 CCTV를 살펴본 결과 곤 전 회장은 지난달 29일 오후 2시 30분께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유유해 집을 걸어 나갔다. 귀가하는 모습은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11시께 곤 전 회장은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로 향한다. 이후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뒤 30일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일본 경찰은 곤 전 회장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곤 전 회장이 어떻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일본을 출국할 수 있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일본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가장 최근 알려진 소식은 곤 전 회장이 일본을 출국할 때 수하물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NHK 보도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악기 상자에 숨어 화물검색을 통과했는데, 화물 케이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가장 기본적인 엑스레이 검사조차 거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감시 체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비행기에는 높이 1m가 넘는 커다란 상자가 여럿 실려 있었는데, 이 중 하나에 곤 전 회장이 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곤 전 회장이 숨어 있던 상자에는 호흡을 위한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쉽게 옮기기 위해 바퀴도 달려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곤 전 회장이 자택을 빠져나올 때 악기 상자를 이용했다고 보도했다. 결과적으론 오보지만 화물 검색대를 통과하는 과정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한 이후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에 의해 포착된 카를로스 곤(왼쪽)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과 그의 아내 캐롤 곤의 모습.(사진=NHK 홈페이지 캡쳐)
탈출 과정 전면서 드러나는 용의주도함

곤 전 회장은 일본을 탈출하기 나흘 전인 지난달 25일 자신을 감시하던 경비업체를 인권침해로 형사고소했다. 곤 전 회장 변호인단은 “곤 전 회장이 자택 주변에서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으며, 외출할 때에도 미행을 당하고 있다”면서 “닛산이 누군가를 고용해 곤 전 회장이 보석조건을 위반하는지 감시하고 있다. 이는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산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닛산은 곤 전 회장이 직원들을 만나 증거인멸을 시도하지 않을까 우려해 경비업체를 통해 곤 전 회장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곤 전 회장이 형사고소로 강경 대응하자 닛산은 29일 감시를 일시 중단했다. 곤 전 회장이 유유히 걸어서 자택에서 도망친 날이다. 그의 용의주도함이 엿보인다.

탈출 과정 면면에서도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임이 확인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보안전문가 2명을 고용, 지난달 28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공항에서 터키 전세기업체 MNG제트로부터 자가용 비행기를 2대 대여했다.

보안전문가 2명은 이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 공항에서 간사이 공항으로 이동, 곤 전 회장을 태운 뒤 이스탄불로 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뒤 곤 전 회장은 차량으로 90m 가량을 이동, 미리 준비돼 있던 또다른 자가용 비행기로 갈아타고 베이루트로 떠났다. 그의 도주를 도운 2명의 전문가는 민간 항공기를 타고 이동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 터키 정부는 지난 3일 곤 전 회장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 4명, MNG제트 임원 1명 등 총 9명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MNG제트 임원은 “곤 전 회장이 승객이었는지 몰랐다”며 “의뢰를 받았을 때 협조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레바논 입국을 위해 여분의 프랑스 여권을 발급받고, 일본 법원으로부터 소지 허가까지 받아뒀다는 점도 곤 전 회장의 주도면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이 지난해 3월 보석 결정 이후 석방되고 있는 모습. (사진=AFP)
일본 사법체계 부당함 고발 영화 만들지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일본을 탈출하기에 앞서 영화 제작자인 존 레서를 만났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버드맨’을 만든 인물이다. 곤 전 회장은 레서에게 자신의 결백함과 일본 사법당국의 부당한 처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일련의 과정을 영화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뉴욕타임스는 “곤 전 회장은 영화로 자신의 처지를 알리면 동정 여론이 일어날 것인지를 궁금해했다”면서 “자신이 패소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데 따른 논의”라고 설명했다. 신문은 또 “그가 레서에게 탈출 계획에 대해 언급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영화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질문에 ‘놀라운 결말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일본 사법당국의 불합리한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변호사를 대동하지 못하고 장기 구속 수사가 가능하다는 점, 일본 검찰이 기소한 사건의 유죄율이 90%를 넘는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곤 전 회장은 레바논에 도착한 뒤 발표한 첫 성명에서 “일본의 불의와 정치적 박해로부터 비로소 해방됐다. 유죄를 전제로 하고, 차별이 만연하고, 기본적 인권마저 무시되는 일본의 그릇된 사법제도의 인질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도 곤 전 회장이 레서와 영화에 대해 논의할 때 ‘영화 속 악당은 일본의 사법시스템’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카를로스 곤(왼쪽)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과 그의 아내 캐롤 곤.(사진=AFP)
8일 기자회견에 쏠린 눈…탈출 과정 밝힐지 주목

곤 전 회장은 오는 8일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예고했다. 그가 어떤 내용을 발표할 것인지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다만 탈출 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그의 아내 캐롤 곤과 가족들이 도주를 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체포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어서다.

곤 전 회장은 인터폴(국제형사기구)이 지난 2일 자신에게 적색수배령을 내리자 성명을 내고 “아내와 가족은 탈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레바논 사법당국은 인터폴 요청에 따라 곤 전 회장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히면서도, 합법적 입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일본과 범죄인 신병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곤 전 회장이 일본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으아악! 안돼! 내 신발..."
  • 이즈나, 혼신의 무대
  • 만화 찢고 나온 미모
  • 지드래곤 스카프 ‘파워’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