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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범죄 피의자를 열사로 둔갑시키는데 다들 일조하는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며 “블랙리스트가 범죄 행위이고 그것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를 굳이 설명해야 할까? 그걸 알지 못한다면 의사의 자격이 없고 알고도 우긴다면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초심을 되새길 때다. 불법이 아닌 사직을 인정받기 위해 지난 6개월간 지루한 싸움을 견뎌냈다. 그런데 블랙리스트라는 훨씬 더 큰 불법을 자행하는 게 맞나? 그걸 용인하고 감싸는 게 맞나? 정부가 불법을 단호히 진압하는 그림을 이제 와서 그려주고 싶은 건가?”라고 반문했다.
조 교수는 “의료계의 선배들에게도 실망이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해주는 이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범죄행위까지 오냐오냐 해주는 게 선배와 스승의 역할인가? 앞으로 후배들, 제자들에게 대체 무엇을 가르칠 작정인 걸까?”라고 토로했다.
또 “나는 의사들의 윤리의식이 일반인들보다 높길 바라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낮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며 “진료실에서 성추행한 의사를 동료란 이름으로 감싸지 않았으면 하고, 마찬가지로 블랙리스트를 옹호하는 모습은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영리하게 싸울 때다. 파업이 아니고 사직을 선택했던 것처럼. 정부와 싸울 필요가 없다. 시민들을 설득하는 게 승리다. 그게 투쟁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정 씨는 지난 20일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의사들의 신상 정보를 담은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게시한 혐의(스토킹처벌법 위반)로 구속됐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정 씨 구속 다음 날인 21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정 씨를 면회한 뒤 정 씨를 ‘피해자’로 지칭하면서 “철창 안에 있는 전공의나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당한 전공의나 누구라도 돕겠다는 게 협회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경기도의사회, 서울시의사회, 전라북도의사회 등 다른 의사단체들도 “전공의가 인권 유린을 당했다”며 집회를 열거나 “정부의 초법적 조치에 대한 저항 수단”, “민주주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며 잇달아 성명을 냈다.
한편, 조 교수는 지난달 5일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교사 연수 중 교정에서 낙뢰에 맞아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진 김관행 서석고 교사를 치료했다.
김 씨는 당시 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호흡과 맥박을 찾았지만 심장이 40분간이나 멈춰 있던 탓에 여러 장기가 훼손된 상태였다.
조 교수는 “심장과 폐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지만 환자도 젊고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전력을 쏟아 치료했다”고 전했다.
그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에크모(ECMO·인공심폐기계) 치료로 김 씨는 점차 기력을 되찾았고, 사고 28일 만에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삶을 선물해준 조 교수님이 두 번째 아버지”라고 말한 김 씨는 “최근 의정 갈등으로 응급실을 비롯한 병원 의료진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 아쉽다”며 “환자를 위해 밤낮으로 헌신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노력과 열정이 폄훼되지 않도록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란다”고 전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지난 13일 출범한 광주 응급의료 지원단의 단장이기도 하다.
지원단은 응급의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광주시는 지난 6월 공모를 통해 전남대병원을 수탁기관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