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다사다난한 2001년이 끝자락을 잡고 있습니다. 특히 코스닥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한해였습니다. 카지노업체인 강원랜드의 코스닥 입성도 비중있는 뉴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식투자자라면 증권사 객장이나 체크단말기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강원랜드. 그 현장을 직접 방문한 증권/산업팀 김기성기자가 짧은 기행문을 담았습니다.
여러분, 도박 아니 게임 좋아하십니까.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고스톱이나 포커 한번 안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재미있죠. 사람 3명만 모이면 담요 깔고 화투장 돌리는 중독증은 아니었지만 저도 한때 꽤나 좋아하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밤새는 줄 모르고 게임에 몰입했던 경험이 생각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사족 그만달고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얼마전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있는 강원랜드에 다녀왔습니다. 사장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강원랜드는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내국인 출입 카지노업체입니다.
아침 일찍 태백선에 몸을 실기 위해 청량리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따라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기차를 타자마자 발목 밑으로 스며드는 따듯한 스팀을 벗 삼아 정신없이 졸았습니다.
3시간쯤 지났을까요. 탄광촌으로 유명한 사북역에서 제정신을 차렸습니다. 차창 밖으로 비쳐지는 모습은 예상했던 대로 황량했습니다. 검은 석탄가루를 아직도 뒤집어 쓰고 있는 언덕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영화에서 봄직한 폐광촌이 옆으로 지나갔고 셀수 없을 정도의 터널을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지 4시간이 조금 지나 드디어 강원랜드가 있는 고한역에 도착했습니다. 80년대 초 탄부들과 지역주민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처절하게 싸웠던 사북-고한의 한복판에 들어선 것입니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하늘을 한번 바라보며 기차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근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과거에 석탄을 쉴새 없이 싣고 내린 탓인지 플랫폼이 없었습니다. 철로 중간에 내린 사람들이 잽싸게 뛰더군요. 저도 반사적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스산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고한역을 나오자마자 강원랜드 봉고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길 옆으로도 강원랜드 선전 문구가 나란히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황량한 폐광촌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여기가 바로 강원랜드예요"라는 속삭임을 듣는 듯 했습니다. 전당포도 더러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지노에서 현금 잃고 가는 사람들의 마지막까지도 챙기겠다는 것인지...
5분쯤 걸어 도착한 강원랜드 본사는 생각보다 왜소했습니다. 휘황찬란한 모습은 아니어도 뭔가 세련된 분위기를 풍길 것으로 짐작했지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10층 정도의 건물이었고 건물의 공간이 부족해 재무팀의 경우 폐광촌 초등학교의 일부를 빌려쓰고 있었습니다.
"코스닥 시가총액 3위업체인 강원랜드의 재무팀이 폐광촌 초등학교에 있다!" 웬지 웃음이 나왔습니다.
강원랜드 관계자의 인솔을 받아 백운산 1150m 꼭대기에 자리잡은 스몰카지노에 도착했습니다. 크지는 않았지만 현대식의 호텔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황량한 탄광촌이 아담한 호텔로 오버랩되면서 장면이 넘어갔습니다.
1시간에 걸친 사장 인터뷰를 마치고 호기심에 끌려 카지노로 직행했습니다. 겉모습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미러지호텔 카지노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평일이었는 데도 듣던대로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특히 블랙잭 바카라 러시안룰렛 등 타이블게임 좌석은 앉을 자리도 없이 이중 삼중으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죠. 게임의 결과가 나올 때마다 안타까워하는 얼굴과 환호하는 소리가 뒤섞여 저의 오감을 자극했습니다.
그 순간, "이 사람들 다 뭐하는 사람들이지"라는 호기심 반, 짜증 반의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습니다. "도박 중독자도 있고 휴가차 들른 사람도 있겠지"라는 결론을 얼른 내리면서 강원랜드의 기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폐광지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강원랜드. 올해만 1860억원이나 중앙과 지방재정에 기여했습니다. 올해 예상 매출인 4600억원 중 예상 순이익인 2200억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세금으로 바친 것이죠.
엄청난 수익성을 갖추고 당초 예상대로 폐광지역의 경제발전에 공헌하고 있는 것입니다. 총 직원 1000여명 중 35.3%인 360명을 현지 주민으로 채용하는 등 고용효과도 상당하구요. 강원랜드의 순기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수치들 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강원랜드를 들른 사람이 그만큼 돈을 잃기 때문에 이러한 기여도 가능합니다. "사행심 조장"이라는 멍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강원랜드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원랜드는 오는 2005년이면 카지노 뿐 아니라 테마파크 스키장 골프장 등을 두루 갖춘 가족형 종합휴양지로 탈바꿈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강원랜드가 국내에서 유일한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갖고 있는 만큼 카지노업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강원랜드가 위치한 사북-고한지역은 70년대 한국경제 성장의 일익을 담당했던 곳입니다. 당시 탄부는 고임금 직종이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탄광산업은 어느 덧 사양산업으로 전락했고 사북-고한지역은 을씨년스러운 폐광지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강원랜드를 통해 사북-고한지역이 다시 일어설 채비를 갖춘 듯 합니다. 하지만 카지노의 역기능을 감안할 때 앞으로 넘어야할 험준한 산도 많습니다. 강원랜드가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순기능으로 가득찬 "카지노 경제학"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지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