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경인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공시제도가 공정공시 시행 이후 일부 개선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분기·반기보고서의 재무관련 사항을 점검할 예정이란 소식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정작 투자자를 위한 기본적인 배려에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증권부 김경인 기자가 전합니다.
증권부 기자로서 유난히 당직을 피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 주말처럼 분기·반기보고서 제출을 마감하는 날이지요. 쏟아져나오는 보고서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 자체도 고역이지만, 특히 마감일이 되면 적자기업이 유난히 많아 보는 마음도 그다지 편치 않습니다.
매 분기 보고서 제출일에는 분기보고서와 정정 분기보고서가 공시 리스트를 대거 점유합니다. 마감일인 지난 15일에는 172개 등록사와 82개 상장사가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여유있게 제출했으나 뒤늦게 정정보고서를 제출한 기업들도 속출했습니다.
분기보고서 창을 열면 가장 먼저 요약재무재표를 확인해 봅니다. 분기별 실적개선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회사의 대략적인 규모와 상태를 한 눈에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재무제표`의 복잡한 여러 표들에 웬지 모를 어려움을 느낄 투자자들에게는 특히 고마운 항목입니다.
하지만 이 조차도 몇몇 회사의 보고서를 열어보고 나면 마구 혼란스러워 집니다. 똑같은 양식의 보고서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의 단위가 재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주의깊게 단위를 확인하지 않으면 회사에 대한 엄청난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스타코넷, 태광, 로케트전기 등 `백만원` 단위를 사용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아트라BX, 월드조인트, 엑티패스, 충남방적, 동남합성처럼 `천원` 단위를 쓴 기업들도 있지요. I.S.하이텍, 제일엔테크 등은 `원` 단위로 공시했습니다. 심지어
창민테크(042960),
대구가스(016710)처럼 단위를 아예 표기하지 않은 기업들도 있습니다.
회사의 실적에 대한 업데이트가 확실히 돼있지 않은 경우라면 5억원을 500억원으로 생각하는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VON(033190)과
성광엔비텍(041140) 등은 요약 재무제표의 실적난을 깨끗하게 비워서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단위 뿐 아닙니다. 적자를 의미하는 부호도 (-), `-`, △, ()로 각기 다르게 쓰고 있습니다. 한 분기보고서 안에서 다양한 표현들이 쓰이는 것은 물론이고, 당기순손실이라는 항목에 -1억4469억원이라 쓰여있으니, 손실이란 얘긴지 이익이란 얘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쯤되니 회사 측에서도 단위 등을 실수해 정정보고서를 제출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고, 이에 따라 주가가 출렁거리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곧 정정보고서를 낼 일을 왜 제출 전에 발견하지 못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9일 상장등록법인이 제출하는 분·반기보고서 중 재무 관련 사항에 대해 신속스크린을 실시키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재무제표와 요약재무정보 등이 일치하는지를 상호비교하고 분기검토보고서와 반기검토보고서의 일치여부 또한 점검할 예정입니다. 재무제표간 논리적 모순, 기재오류 등도 확인사항입니다.
이 같은 조치들은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지요. 다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회사 측의 노력과 단위, 표기 등을 규격화하거나 재무제표상 전분기 실적을 공시하게 하는 등 투자자들에게 보다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관계기관의 노력이 아쉽습니다.
부족함과 불편함은 오히려 아주 작은 부분에서 더 크게 느껴지지 않던가요? 배려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공시제도가 진정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기업과 기관 모두 보다 정확하고 알기 쉽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