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백원이라도"…폭염에도 페트병 버리려 '오픈런'하는 시민들[르포]

페트병 무인회수기 앞 긴 줄…다른 지역 원정도
페트병 재활용에 환경 미화까지 '일석이조'
도심 일회용컵 회수 사업은 직장인들 외면
전문가 "정책 홍보, 편의성 등 살펴야"
  • 등록 2024-08-19 오후 3:04:22

    수정 2024-08-19 오후 7:23:58

[이데일리 이유림 박동현 기자] “요즘 페트병 다발 주우려고 눈을 부릅뜨고 다녀요”(서울 관악구 주민 권모씨)

폭염 속에도 ‘페트병 무인수거기’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고물가에 지친 시민들이 개당 10원의 적립이 가능한 페트병을 버리기 위해 ‘오픈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도심 지역에선 직장인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책 효과 극대화를 위한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14일 관악구 봉천동의 한 무인회수기 앞에서 주민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박동현 기자)
늦으면 꽉 차는 회수기…‘오픈런’에 ‘원정’도

19일 오전,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페트병 무인회수기 앞에는 폭염 속에서도 주민 10여명이 쓰레기 다발을 든 채 줄을 길게 서 있었다. 페트병을 포인트로 적립하는 일명 ‘쓰테크(쓰레기+재테크)’를 위해 수거 시간에 맞춰 30분째 대기하는 모습이다. 이 무인회수기에 빈 페트병을 넣으면 한 병당 10원씩 하루 최대 50원까지 적립할 수 있다.

무인회수기의 용량이 적은 탓에 일부 주민들은 수거 시간에 맞춰 ‘오픈런’을 하거나 늦으면 다른 수거기까지 원정을 나서는 경우도 빈번했다. 주민 강모(31)씨는 “내 차례가 오기 전에 수거함이 가득 차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며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변에 있는 수거 가능 기기를 찾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운동도 된다”고 설명했다. 환경미화원 A씨는 “(페트병 수거가) 활발한 지역은 확실히 길거리 쓰레기가 덜한 편”이라며 시민들의 쓰테크 참여 열기를 실감한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권모(67)씨는 “올해 설날부터 페트병을 반납해 포인트를 적립하기 시작했다”며 “지금까지 총 4만 5000원가량의 포인트를 적립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함께 줄을 서던 김모(74) 씨는 “몇백 원이라도 벌기 위해 페트병을 수거하지 않는 일요일 빼고 매주 6일 나오고 있다”며 “길을 가다 누군가 내놓은 페트병 다발을 발견이라도 한다면 ‘횡재’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쓰테크’에 참여하는 이들은 연령도 다양하다. 봉천동에 거주하는 이모(31)씨는 “(적립을) 매일은 못하더라도 출근길에 몇 병 챙겨와 적립하고 간다”며 “포인트가 매일매일 쌓이는 게 마치 게임에서 경험치를 적립하는 느낌이라 은근 중독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페트병 무인회수기를 제작한 업체 수퍼빈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 7월까지 수집된 빈 페트병은 4억 2000만병, 빈 캔은 1억 3650만캔으로 총 누적 환전 금액이 37억 원이 넘는다. 10년도 안 되는 새 무인회수기는 전국에 총 1239대, 서울시 내에만 201대가 설치됐다.

서울 광화문 일대의 한 카페 내부에 설치된 일회용컵 회수대. 이 카페는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일회용컵 회수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나, 카페가 오픈한 지 3시간이 지났는데도 회수대의 전원을 켜지 않고 있다.(사진=이유림 기자)
도심 직장인들은 ‘일회용컵 회수 사업’ 외면

반면 비슷한 취지로 서울시가 광화문 등 도심에서 운영하고 있는 ‘일회용컵 회수 시범 사업’은 직장인들에게 외면받고 있었다. 이 사업은 카페 등 참여매장에서 식별 코드가 각인된 전용 컵을 제공하고 매장별로 일회용컵 회수함을 설치, 일회용컵을 반납하면 1개당 100원을 돌려주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시범사업에 참여한 매장을 점심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이를 이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컵 회수를 위해 별도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본인인증 및 계좌연결을 해야 하는 등 참여 절차가 복잡하고, 컵을 반납하기 위해 다시 카페로 와야 하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곳 일대에서 근무하는 최모(40)씨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지만 굳이 100원을 받으려고 수고스럽게 다시 카페를 찾아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에 참여한 카페들도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카페 직원들은 “컵을 반납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전했고 심지어 오픈한 지 3시간이 지났는데도 회수함의 전원을 켜지 않은 카페도 있었다.

앞서 환경부는 카페 등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으려면 보증금 300원을 내게 하고 컵 반환 시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를 전국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자영업자와 소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자율 시행에 맡기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그나마 제도 안착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제주도의 경우 일회용컵 반환율이 지난해 10월 78%에서 최근 54%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일회용품 사용 및 재활용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참여자 설정, 교육과 홍보, 편의성 증대, 인센티브 제공 등 다각도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업체(카페 등)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소비자와 시민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며 “시범사업을 통해 행정적 기술적 장애 요인을 파악하고 단계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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