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급히 먹은 떡이 체한다

  • 등록 2004-11-09 오후 5:09:32

    수정 2004-11-09 오후 5:09:32

[edaily 이학선기자] 원화값이 50개월만에 최고로 치솟자 채권시장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물가에 신경쓰지 않고 과감히 콜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증권부 이학선 기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익명의 관계자들이 앞장서 콜금리 인하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죠. 한 번 들어볼까요. 한국은행은 보고서를 낼 때 공식 견해와 비공식 견해를 나눕니다. "본고의 내용은 집필자 개인 의견으로서 한국은행의 공식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님"과 같은 문구가 없다면 한국은행 공식견해로 봐도 무방합니다. 책 한 권 낼 때에도 담당 국장이 첨삭지도를 할 만큼 한국은행은 사전검열에 철저합니다. 공식 견해를 비공식 견해로 둔갑시켜 여론을 은근슬쩍 떠보기도 하지만, 비공식 견해를 공식 견해로 포장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문구 하나에 전전긍긍할 만큼 소심한(?) 태도를 보이는 한국은행이 최근 8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 하나를 냈습니다. 잠깐 들여다보겠습니다. "최근의 채권수익률은 경기 및 금리전망 등 경제적 요인 이외에 채권공급 부족이라는 수급요인이 가세함으로써 경제의 기초여건과 다소 괴리된 부분이 있어 향후 시장여건에 변화가 발생할 경우 금리의 급격한 상승 등 채권시장의 취약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향후 채권수익률의 하락과 수익률곡선의 평탄화가 과도하게 진전될 경우에는 투자자에게 유동성 프리미엄을 보상하지 못하고 금리상승시 손실을 발생시켜 자금운용이 단기화될 수 있다" 지난 10월 "채권시장은 과열됐다"며 채권시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박승 총재의 발언과 궤를 같이 하는 보고서입니다. 혹시 콜금리를 내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졌던 채권시장은 이 보고서 하나에 흠칫했고, 발표 당일 3.44%까지 밀고 내려가던 지표금리는 오름세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라는 공식문패를 달고 나온 `금융안정보고서`의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공식 보고서임에도 불구하고 금통위를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익명의 `관계자`에 의해 땅 속 깊이 파묻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채권시장에 난데없이 "11월에 콜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11월에 하지 않으면 12월 인하 가능성은 더 커진다"는 한은 관계자의 발언이 들이닥쳤고, 뒤이어 "환율이 예상보다 급락한 건 금통위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한은 관계자 발언이 소개됐습니다. 동일인인지 서로 다른 사람인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철저히 익명에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재경부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쪽에서도 고위 관계자가 "콜금리 결정에 있어 시장금리 하락 추세를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합니다. 역시 누군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뒤집어볼까요. 일반적으로 한국은행은 금통위 1주일 전부터 통화정책과 관련된 언급을 삼가하고 있습니다. 통화정책 결정에 잡음이 생길 수 있는 데다, 시장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죠. 한국은행 집행 간부들은 거듭된 취재요청에도 금통위 건은 함구로 일관합니다. 이 와중에 간 큰 한국은행 직원이 콜금리 인하 가능성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재경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헌재 부총리마저 콜금리에 대한 언급은 절대 않겠다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마당에 고위 관계자라는 사람이 11월 금통위를 겨냥하고 이 같은 말을 내뱉었을까요? 한은 관계자, 재경부 고위관계자로 뭉뚱그려지는 익명의 관계자들이 누군지, 무슨 일을 담당하고 있는지, 금통위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한 번쯤 의심해볼 만했는데 채권시장은 이를 뒤로 미뤘습니다. 나중에 "합리적 투자는 아니었다"며 참가자들 스스로 개운치않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차피 선택의 문제라면 콜금리 인하와 동결 가능성은 50대 50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관별 전망이 다르듯 한은과 재경부 관계자 개개인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개인의 의견을 공식 의견과 동일한 저울로 가늠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도 익명의 관계자 발언에‥. 급히 먹은 떡이 쉽게 체하 듯 익명의 관계자들이 이런저런 발언을 남발할 때 한 발 뒤에서 각종 경제지표와 거시정책, 수급환경 등을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그동안 한국은행이 냈던 보고서를 이리저리 뒤척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설사 당장의 예측이 빗나갔더라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 자세는 적어도 `코멘트 리스크`로 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11월 금통위라는 굵직한 변수를 앞두고 채권시장 심리가 약해졌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10월 금통위 때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살펴가는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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