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화곡동에서 만난 이경문(79)씨는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이날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폐지를 주워 3400원을 벌었다. 이씨는 “박스를 얻어가는 가게에 매번 가는 시간에 안 가면 다른 사람이 가로채 박스를 구할 수 없다”며 “낮에 나와 일하다 어지러울 땐 그늘에 가서 대자로 누워 쉬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7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폐지를 줍거나 노상에서 물건을 파는 노인들은 쓰러질 정도로 덥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빈곤을 겪는 노인들이 폭염 속 일자리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질 높은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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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지난 5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17명으로 기록됐다. 온열질환자는 누적 1810명으로 이 중 65세 이상 고령층이 589명(32.5%)에 해당한다.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전체 인구의 19.5%(지난달 10일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온열질환에 고령층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이모(78)씨는 한 은행 앞에 리어카를 세워 놓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코너에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씨는 “오전 6시쯤 나와 점심 먹기 전까지 일을 한다”며 “요새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일을 많이 하지 못해 벌이가 줄었다. 다행히 폐지 값이 조금 올라 다행”이라고 웃음을 보였다.
서울 강서구에서 만난 정모(74)씨 부부는 “젊을 때 모아 놓은 돈을 다 까먹고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국 이런 일 밖에 없다”며 “너무 더워 쉬고 싶어도 통장 잔고를 보면 쉽지 않다. 더워 쓰러져도 나와야 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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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에서 만난 60대 함모씨는 “여기서 이렇게 생선을 판 지 7년이 됐는데 자리를 조금만 다른 쪽으로 옮겨도 단골 손님들이 내가 장사한다는 걸 모른다. 그러다 보니 땡볕이어도 그늘로 자리를 옮기기 애매하다”며 “주변 상인들이 도와줘 찬물도 마시고 냉커피도 마시면서 버틴다”고 웃음을 지었다.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노인들도 폭염에 노출되긴 마찬가지였다. 이들 중 일부는 광고 문구가 적힌 팻말을 어깨에 메고 있어 더욱 더위에 취약해 보였다. 서울 종로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안모(70)씨는 “더워서 나오기 싫다가도 돈을 생각하면 안 나올 수가 없다”며 “쓰러지든 말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노인들의 폭염의 위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질 높은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인 상황에서 질 높은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며 “단순한 공공형이 아닌 4대 보험도 가입되는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