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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이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일부터 지난해 말까지의 러시아 통관 데이터를 자체 분석한 결과, 러시아는 이 기간 동안 10억 7756만달러(약 1조 4300억원)어치의 반도체를 수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3억 6671만달러)의 2.9배 규모다. 이 가운데 미국산 반도체 수입액이 7억 4864만달러(약 9914억원)로 약 70%를 차지했다. 이 역시 전쟁 이전(2억 6770만달러)의 2.8배에 달한다.
미국이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대(對)러 반도체 수출을 금지했음에도 수입 물량이 급증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당시 미국은 제3국 기업도 제재를 위반하면 미 기업들과 거래를 금지토록 했다. 반도체가 미사일, 군용 전투기 등의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산 반도체는 고성능이어서 군사장비 부문에선 시장 점유율이 높다.
중국을 경유한 거래는 21%(230건)로 5123만달러(약 680억원) 규모였다. 침공 전과 비교해 거래액이 10배 이상 늘었다. 앞서 세계 400여개 금융기관 등이 가입한 국제금융협회(IIF)도 러시아의 지난해 1~9월 반도체·전자회로 수입액이 전년 동기대비 36% 증가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외에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아날로그 디바이시스, 온 세미콘덕터 등의 제품이 거래됐다. 이들 기업은 한목소리로 대러 수출을 중단했다며 제재 위반 사실을 부인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우리 제품이 설계 이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부정판매나 재판매는) 반도체 업계가 직면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아날로그 디바이스도 “당사 정책을 직접 위반한 것”이라며 “부정판매 또는 전용된 것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우회 수입을 원천 차단하긴 힘들다는 진단이다. 중개 기업이 제재를 받더라도 신규 업체를 설립해 사업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 플랑드르 평화연구소의 디데릭 커프스 수석 연구원은 “공급망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어 반도체의 최종 목적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고 감독할 수도 없다”며 “허점을 막는 건 쉽지 않겠지만, 민관이 연계해 수출 상대 기업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이 정보가 전 세계적으로 공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