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정명수기자]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를 이어 또 한 번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일전을 벌일 모양입니다. 이번 전쟁이 왜 필요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9.11테러와 후세인이 어떤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전쟁의 세밀한 내막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남겨지겠지요. 과연 이라크 전쟁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국제부 정명수 기자의 생각을 들어보시죠.
`로마인 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 그러나 진정 현명한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니 미국은 전쟁의 역사와 경험이 풍부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91년 걸프전을 벌일 때 옆에서 조용히 이를 지켜봤겠죠. 부시 대통령이 역사책을 읽었다면 전쟁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부시 대통령이 로마제국사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1800년 전 로마제국의 최고 절정기로 돌아가보죠.
서기 199년 로마 제국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세베루스 황제가 제위에 오르기 직전, 로마는 `5명의 현명한 황제`가 있었고 `팍스 로마나`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5현제의 마직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자, 로마는 내란의 혼란에 빠져들게 됩니다. 북방을 지키는 군단장들과 로마 원로원의 유력자들이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이 내란을 평정한 것이 게르마이아 전선의 군단장 중 하나였던 세베루스입니다. 그는 차례로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유일 황제로 등극합니다. (유명한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이 때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군인이었습니다. `철학자 황제`라는 마르쿠스 황제와 달리 그가 정권을 유지하는 노하우는 무력이었습니다. 전임 황제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내란을 통해 황제가 됐다면 그의 정통성은 `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서기 199년 군인 황제 세베루스는 제국의 동쪽 끝, 지금의 이라크 지역의 강국, 파르티아 왕국 원정을 전격적으로 단행합니다. 파르티아는 로마 제국의 영원한 숙적이었습니다. 제국의 동쪽 변방은 항상 전쟁 리스크에 노출돼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화친 전략으로 파르티아와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즈음 세계는 제국의 동방과 북방에서 민족의 대이동이 막 시작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파르티아는 로마 제국의 가상 적국이 분명했지만 파르티아의 동쪽에서는 더 강력한 민족이 밀려오고 있었던 것이죠.
현명한 로마 황제들은 파르티아를 `방패`로 활용했습니다. 파르티아 정권이 유지되어야 그 너머 야만족의 공격으로부터 로마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역대 로마 황제들은 파르티아를 공격하더라도 왕조 자체를 붕괴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적을 적으로 막는다는 전략이었죠.
그런데 정통성에 자신감이 없었던 군인 황제 세베루스는 화려한 개선식과 파르티아 왕조를 맞바꿔 버렸습니다. 이미 파르티아는 동방의 강국이 아니었습니다. 왕조 내부의 갈등과 이민족의 침략으로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톡하고 건드리면 쓰러질 듯한 파르티아를 세베루스 황제는 간단하게 패망시켰습니다.
그는 화려한 개선식을 거행했지만 로마 제국은 파르티아의 동쪽(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힘을 모으기 시작한 신흥 세력,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국경을 맞닿게 됩니다. 파르티아는 적당하게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가상 적국이었지만, 사산조 페르시아는 정말로 심각한 적국이었고, 결국 로마 제국은 동방의 강력한 적대 세력과, 제국 내부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5현제 직후 로마는 `거대한 패망의 역사`를 시작한 것이죠.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국제 뉴스를 다루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선거전에서 대법원의 판결로 어렵게 백악관에 입성한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최근의 사실입니다만 미국와 이라크가 한 때 협력관계(?)였다는 것은 잊혀진 과거의 사실입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냉전 논리에 따라 소련 등 공산국가들이 이란을 지지하는 것에 대응, 이라크 정권을 선택한 것이죠.
91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도 미국은 후세인 정권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않았습니다. 이를 놓고 이라크가 건재해야 이란 등 중동의 반미 국가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마치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왕국과의 관계와 같죠.
소련이 무너지고 유일한 제국(?)인 된 미국은 더 이상 이라크(파르티아)가 필요없게 된 것일까요. 이라크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면 미국의 전략적 방위선은 이란과 맞닿게 됩니다. 그러나 이란이 미국에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시아의 서쪽에서, 중동을 지나 중앙아시아까지 -그 한 가운데에 아프가니스탄이 있죠- 친미성향의 정권이 들어서 있다고 보면, 미국의 세력은 바로 중국에 닿게 됩니다. 우연일까요? 만약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지 북한을 제압한다면 아시아 동쪽에서도 미국의 방위선은 중국 국경선 코 앞까지 다가서게 됩니다.
냉전이 끝난 `팍스 아메리카 시대`, 진정 제국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로마 제국은 동쪽과 북쪽에서 공격을 받고 무너졌습니다. 대서양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멀리 동쪽 끝에는 중국이, 지중해 북쪽에는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역사적 우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