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의 말은 언제들어도 매끄럽습니다. 이날도 당당했습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줄기세포는 모두 거짓"이라는 최종보고서를 발표한지 이틀만의 일입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학문적 범죄행위"라고 밝힌 것이 바로 어제였습니다.
소위 `12·15 사태` 이후 황교수가 행여 잠적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국민들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황교수의 주장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들도 꽤 있었습니다. 배신감을 억누르지 못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황 교수의 퇴장에 박수와 욕설이 동시에 터져나왔다는 상황이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봉합되는 듯 했던 국민 여론이 또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황빠`(황우석교수를 지지하는 측)와 `황까`(황우석교수를 반대하는 측)라고 한다지요.
현 상황은 지난 대선 때 불튀겼던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을 연상하게 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마음이 됐던 것도 잠시, 대선을 앞두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었죠.
문제는 대립의 명분입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보수와 이념의 대립은 민주주의 발전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와 경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대안이 방법론적으로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민주주의 풍토가 한발 진전했다는 데 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황우석 논쟁은 어떻습니까. 뚜렷한 명분이 없습니다. 다만 황우석 교수가 거짓말을 하느냐, 노성일 이사장이 거짓말을 하느냐. 만나는 사람들마다 누가 더 나쁘다고 설전을 벌이며 언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배아줄기세포는 아직 누구의 조작인지는 확실치 않아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황 교수가 미즈메디병원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지만 국민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황우석 교수가 맞느냐, 노성일 이사장이 맞느냐는 의미가 없고 누구 잘못이 더 크냐는 더욱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이제 그들의 진실게임에 동참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완으로 남은 진실은 검찰에 맡기면 됩니다. 소모적인 논쟁이 심화된다면, 검찰 수사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그 논쟁은 지속되고 국민이 받은 상처는 덧나게 됩니다.
이제는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내 생명과학계의 발전 방향을 위한 방향으로 논쟁을 벌여야할 시점입니다. 배아줄기세포가 조금 늦게 만들어져서 입는 국가손실보다 소모적인 국민 분열이 더 지속될 때의 국가손실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더 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