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윤경기자]
일본 경제는 오랜 디플레이션을 겪으며 버텨나갈 기초 체력마저 부실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따라 경제의 바로미터가 되는 일본증시는 올초 18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하며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일본증시 행보가 심상치않습니다.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져도 증시는 보란 듯 올랐고 오늘은 도쿄증권거래소가 폭탄테러 위협으로 한때 소개됐지만 1개월래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일본증시, 어째서 이런 청개구리 움직임을 보이는 것일까요? 김윤경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올초 일본증시는 바닥으로, 바닥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때도 오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장기간 위축됐던 실물경기가 획기적으로 되살아날 만한 징후가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미국 경기에 대한 전망도 당시는 불투명했구요.
물론 간간히 단기적으로, 이를테면 월별대비 경제지표가 호전되는 기미는 보였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요원해 보이는 일본 경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일본증시라고 볼 수 밖에요.
그런데 3월들어 일본증시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자모양 뛰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회계연도가 마감되는 3월이면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투자손실을 막기 위해 주식을 더욱 내다 팔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당연히 추가하락해야 셈이 들어맞는데 완전히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이런 상승추세 속에서 객관적으로 보아 "악재"일 만한 재료도 전혀 악재로 작용하지 못했습니다. 국가신용등급의 하향 조정만큼 증시에 타격을 주는 악재도 없으련만 일본증시는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지난 15일 일본의 신용등급(장기외화표시채권 기준)을 현행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고 발표했지만 다음날 비웃 듯 랠리를 연출했습니다.
게다가 이번 S&P의 하향조정은 지난 75년 이후 "AAA"의 최고 수준을 유지해 오던 일본의 신용등급이 지난해 2월부터 짧은 기간동안 3회에 걸쳐 하향조정, 선진7개국(G-7)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전락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무디스도 "5월까지 최고 2단계까지 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변죽을 울렸는데도 일본 증시는 적어도 겉으론 콧방귀도 안뀌더군요.
16일 닛케이225 지수는 전일보다 1.88%(209.36엔) 오른 1만1346.66엔을 기록했습니다.
오늘도 크다면 클 수 있는 돌발변수가 등장했습니다. 거래가 시작되기 직전 도쿄증권거래소에 폭탄테러를 위협하는 전화가 걸려왔고 거래소에는 소개령이 내려지고 직원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테러가 발발하지 않더라도 이런 돌발악재엔 대체로 증시가 잠깐동안이라도 하락세를 보이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 일본증시, 놀랍게도 강세로 출발했더군요. 마감지수요? 1개월래 최대폭으로 상승, 1만1700선을 넘어섰습니다.
미국 기술기업들의 실적전망 호조라든지 엔화 약세와 같은 기본적인 재료가 있었긴 하지만 1개월래 최대폭까지 뛰다니, 정말 "못말리는 일본증시" 아닙니까.
왜 이렇게 오르는지 정말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멘트를 추적해 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일본증시의 상승비결의 뒷배경은 일단 "정부"라고 단언하고 있었습니다.
제이드 앱솔루트 펀드 매니저스의 펀드 매니저 스콧 맥글래션은 정부가 증시부양을 위해 연금펀드 자금을 증시에 수혈, 주가가 오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정부는 회계연도가 마무리되는 3월 31일 이전부터 은행권의 주식투자 손실 보전으로 인한 금융권 위기방지를 위해 증시에 자금을 흘려 넣어 왔다는 것입니다.
크레디스위스 퍼스트보스턴(CSFB)도 지난 30년간 일본증시가 연중 최고를 기록했던 것은 언제나 3월과 4월이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들은 지난달 1일 이후 닛케이225지수가 200일간의 평균지수를 웃돌게 되면서 상승폭이 컸던 종목들에 주목을 했는데요, 외국인들이 외면하는 니폰스틸과 같은 굴뚝기업, 그리고 시가총액이 크지 않은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 등의 주가가 크게 오른 것은 바로 정부의 시세조작 가능성을 더욱 확신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일본의 수출이 1월과 2월 계속해서 증가했다든지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이 지난주 5분기만에 처음으로 1분기 매출이 늘어났다고 발표, 일본 전자업체들의 수요회복을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불거진 것도 일본증시에는 호재가 됐습니다.
제이드 앱솔루트의 맥글래션은 "올해 정부의 매수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세계 무역 및 일본 산업생산의 호조, 그리고 증시의 랠리가 좋은 연관관계(correlation)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오늘자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시장이 국가등급 조정에 심드렁한 이유는 시장이 신용평가기관들을 앞서 나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더군요.
지난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발발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신용평가기관들이 이제 동아시아 경기 회복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낮은 등급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신용평가기관들 "양치기 소년" 된 셈입니다.
일본증시, 그러면 언제까지 랠리를 보일 것이냐고 묻고 싶으시겠죠? 글쎄요, 이 질문은 들은 듯 못들은 듯 스리슬쩍 전문가의 멘트를 내놓으며 답변을 대신할 수 밖에 없겠네요. 귀신 아니라 귀신 할아버지도 모른다는 증시 전망을 어찌 시원스레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메릴린치 인베스트먼트 매니저스의 일본 주식담당 마크 데스미츠는 "일본경제의 펀더멘털이 개선되지 않는 한 어떠한 자금수혈도 시장을 지속적으로 지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미국 경제가 예상외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기업들의 확신이 부족한 것도 증시 랠리의 지속을 단언하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단칸보고서(일본은행이 내놓는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에서 일본 제조업체들은 올 회계연도 자본지출을 전년에 비해 12% 줄일 것이라고 답했고 이는 전년도 9.3% 줄였던 것에 비해서도 증가한 수치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쨌거나 정부의 연기금 펀드유입을 통한 증시부양은 투자자들에게 일본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위험을 감소해주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슈뢰더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앤드류 로즈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본증시가 랠리를 지속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전제했지만 "그러나 단기적인 수급요인은 긍정적"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따라서 매수세가 만연해 있다"라고 덧붙이는군요. 어디 얼마나 더 오를지 한번 지켜봅시다. 이건 얼마나 내릴지 지켜보는 것처럼 마음 무거운 일 아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