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테라·루나 폭락 사태’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도주 11개월 만에 검거되면서 수사기관의 추적도 막을 내렸다. 지난해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행방이 묘연했던 권 대표는 동유럽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꼬리를 밟히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테라폼랩스 관계자 등 주변 인물을 수사하며 수사망을 좁혀가던 검찰은 권 대표의 국내 송환 절차를 밟은 뒤 직접 그를 조사할 방침이다.
| 권도형 테라 대표.(사진=테라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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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찰청은 몬테네그로에서 전날 검거한 권 대표와 한창준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로 의심되는 인물의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위조 여권을 이용해 두바이로 출국하려다가 현지 경찰에 붙잡혔고, 법무부는 범죄인 송환 절차에 돌입했다.
몬테네그로는 권 대표가 지난해 9월 거처를 마련했다고 알려진 세르비아 옆에 위치한 국가다. 세르비아는 권 대표의 행적이 확인됐던 마지막 국가였으며, 법무부가 지난달 그를 추적하기 위해 직접 현지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과 법무부 국제형사과장을 파견하기도 했다.
권 대표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자 지난해 4월 말 싱가포르로 출국하며 검찰 수사망을 피해왔다. 수사 초기 권 대표는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결백을 주장했다. 권 대표는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도주 중이 아니다. 우리와의 의사소통에 관심을 보이는 정부 기관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숨길 것이 없다”고 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한국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하고 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사건에 접근하고 있다”며 검찰을 비난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단장 단성한)에게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1호 사건’으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 당시 합수단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1호 지시’로 취임 하루 만에 부활했고, 금융범죄 수사력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 피해자들이 서울경찰청 금융수사대가 아닌 합수단에 권 대표 등을 고소·고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권 대표를 추적하기 위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해 지난해 9월 발령하도록 하고, 은닉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950억원을 동결한 뒤 지난해 11월 여권 무효화 조치도 완료했다. 아울러 테라폼랩스 창립 멤버인 니콜라스 플라티아스와 한 전 대표 등 관계자 6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고, 권 대표의 측근인 테라폼랩스 업무총괄팀장 유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직접 권 대표를 수사한다면 검찰에게 남은 건 ‘가상화폐의 증권성’ 입증이다. 증권성이 입증돼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루나·테라에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법원은 지난해 10월 권 대표의 구속심사에서 테라와 루나의 증권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다만 미국 금융당국이 지난 2월 테라와 루나의 증권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검찰 수사에도 힘이 실릴 방침이다. 검찰은 “루나는 증권성을 인정하기 위한 요건들이 굉장히 뚜렷하다고 판단했고, 그에 비해 테라는 좀 더 다툴 여지가 있다”며 “증권성에 대해선 계속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