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준비없는 아버지와 신용불량 아들

  • 등록 2003-07-15 오후 4:01:21

    수정 2003-07-15 오후 4:01:21

[edaily 한상복기자] 우리나라 직장인 10명중 3명만이 노후에 대비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청소년들의 금융 이해력(FQ)이 낙제 수준이라고 합니다. 특히 신용카드에 대한 이해가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아버지들은 준비없이 살고, 아들 세대는 신용불량자 문턱으로 갑니다. 답답한 세태를 증권부 한상복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지난 일요일, 당직근무를 하다가 문득 친척 K씨가 생각났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입니다.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을 것이란 추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없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가 원하는 것마다 부모가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잘 나가는 전문직 종사자였습니다. 요즘 K씨는 아내와 마찰이 잦습니다. 아이 조기유학 문제를 놓고 승강이를 벌이는 중입니다. 그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 것은 부모님 문제입니다.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드리고 있는데, 항상 "부족하다"는 핀잔을 듣는다는 것이죠. 부모님은 집을 줄여가며 K씨와 동생들을 결혼시켰습니다. 지금은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서 기거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고급차에 값비싼 애완견을 애지중지합니다. 문득 K씨 생각이 난 것은 흥미로운 기사 2건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지역 직장인 100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첫번째입니다. 직장인들은 노후준비 자금으로 1억~7억원을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생각` 뿐입니다. 노후자금을 `준비하고 있다`는 응답이 32.4%에 불과한 반면, `별 준비를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45.1%였습니다. 한술 더 떠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답변이 22.5%에 달했습니다. 사오정(45세면 정년이라는 유행어)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물론,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K씨의 아버지 역시 대단한 자신감을 가졌던 분으로 기억됩니다. 수입이 엄청나다는 얘기를 여러번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부자의 대열에 끼지 못한 것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업을 한 적이 없으니 대단한 피해를 본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지금 살림은 예전에 비해 궁색하지만 당신께서 만족이라면 크게 나쁠 것도 없겠지요. 문제는 K씨입니다. 대기업 차장인 그는 "열심히 사는데 빚만 늘어난다"며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그 원인을 부모에게 돌립니다. 부모에게 여유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쪼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묘한 것은 K씨가 그처럼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부모의 씀씀이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 교육을 위해 아파트를 팔고 강남지역에 전세집을 구했고, 부부가 각자 자동차를 한대씩 굴립니다. K씨의 부인은 아이의 로드매니저입니다. 하루종일 학교며 학원을 동행하느라 자동차가 한대 더 필요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내리사랑의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교생 금융 이해력 평가 결과에 대한 기사를 보셨지요? 고교생 10명 가운데 9명이 신용카드 관련 문항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이런 대목을 최근의 젊은층 신용불량자 급증과 결부시킨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신용불량자 수는 300만명을 돌파했고, 줄어들 기미가 좀체 보이지 않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청소년들의 이같은 금융 이해력 미흡을 학교 탓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학교 교육이 잘못됐다"는 것이죠. 그런 탓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육에 있어 직업은 `자아실현의 수단` 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먹고 사는 일 같은 세속적인 일은 뒷전이지요. 하지만 저는 가정의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첫번째 교사는 그 부모입니다. 준비 없이 생활하는 아버지와 아들에게 미래에 대한 대비나 철저한 신용관리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런 기사들을 보는 순간, K씨와 그의 부모 얼굴이 떠올랐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도 그렇지만 가난도 상속됩니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노후를 그나마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것을 보내는 사람마다의 사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상공회의소의 설문 결과, 직장인들은 "오랫동안 일을 하고 싶다"고 일제히 답변했습니다. 20대는 59세라고 답했고 30대는 60세, 40대는 62.8세, 50대는 64.2세라고 응답했습니다. 희망 정년이 60세를 훌쩍 뛰어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일하는 여의도 바닥에서 50대 이상의 직장인은 둘 중 하나입니다. 임원급이 아니면 수위이죠. 행복이나 불행을 만드는 주체는 당사자, 그 자신입니다. 행복 여부는 능력 및 실천, 욕심과 함수관계를 보인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좋은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욕심이 적다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겠지요. 반면 욕심은 많으나, 능력과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스스로와 세상에 대한 근거없는 증오를 갖게 됩니다. 그런 증오가 불행을 만듭니다.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으며,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차분하게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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