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17일(현지시간) 통화정책을 전환하는 시점이 올해 봄이 아닌 여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이날 유럽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17일(현지시간)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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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봄에 금리가 낮아질 거란 시장의 기대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하 시점을 여름으로 제시한 일부 ECB 집행위원들의 견해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ECB 정책위원인 클라스 노트 네덜란드중앙은행 총재는 CNBC와 인터뷰에서 “시장이 이미 더 많은 완화 조처를 할수록 금리 인하 가능성은 줄어들고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낮아진다”라며 라가르드 총재의 견해에 힘을 실었다. 또 ECB 정책위원인 프랑수아 빌레로이 드 갈라우 프랑스중앙은행 총재도 올해 금리인하가 시작되더라도 데이터에 따라 결정이 내려지는 만큼 언제 인하가 시작될지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라가르드 총재는 “큰 충격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현 금리 수준은 정점이지만, 인플레이션이 계속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기간 동안 금리를 제한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너무 빨리 금리인하를 단행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더 많은 금리인상을 해야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라가르드 총재는 “늦은 봄까지는 (금리 정책 판단에 필요한) 임금 인상률 관련 정보를 얻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노동집약적 서비스 부문에서의 물가 상승률이 4% 수준으로 여전히 너무 높고, 유로존 근로자 1인당 임금이 5.2% 인상되는 등 물가 압력이 너무 높다”고 진단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사실상 조기 인하론을 일축한 발언으로 유럽 증시는 출렁였다. 벤치마크 격인 스톡스유럽600지수는 1.13% 하락 마감해 작년 10월 말 이후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영국의 FTSE 100 지수도 1.48% 내려앉아 작년 8월 중순 이후 가장 약세로 마감했다. 이밖에 독일 대표지수인 DAX30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84%, 프랑스의 CAC40 지수는 1.07% 각각 하락했다.
이밖에 영국의 물가 상승률이 10개월 만에 반등한 것도 통화 완화 기대감을 위축시키는 요인이었다.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0%(전년 대비)로, 작년 2월 이후 처음으로 올랐으며, 시장 추정치(3.8%)도 웃돌았다.
매튜 랜든 JP모건 프라이빗뱅크 글로벌 시장전략가는 “시장에서 올해 영란은행(BOE)이 얼마나 많은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을지를 너무 열광하고 있다”며 통화정책 전환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