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계약 해지 '내 맘대로'..'갑중갑' 용산 전쟁기념관(종합)

대관계약 기념관 일방 유리하도록 작성돼
기념관 임의로 계약 해지 가능..위약금 규정도 없어
임차인은 해지시 대관료 전액 부담 강요
  • 등록 2014-07-15 오후 2:30:19

    수정 2014-07-16 오후 4:19:49

용산 전쟁기념관이 전시관 대관 시 임차인에게 불리한 계약서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전쟁기념관)
[이데일리 최선 기자] 국방부 산하 전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이 대관 관련 불공정 계약 문제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대관 계약시 전쟁기념관 측은 ‘관리상 필요할 경우’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이에 대한 배상 규정조차 마련해놓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때문이다. 이밖에도 ‘을’인 임차인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여한 조항들이 시설물 운영 내규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군 당국은 각종 사업 계약시 수평적 계약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산하기관에선 ‘갑’의 위치를 남용한 일방적 계약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16일 용산 전쟁기념관의 ‘기획전시실 운영 내규’와 ‘시설 사용료 징수 규정’에 따르면 기념관은 대관 계약을 체결한 사용자(임차인)가 계약 사항을 위반하거나 ‘전쟁기념관의 관리상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관리상 필요에 의한 계약 해지시 이에 따른 위약금 또는 배상금 지급 규정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기념관 측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도 이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얘기다.

‘전시장 임대차 계약서’ 또한 기념관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들로 채워져 있다. 전시장 임대차 계약서 제9조엔 ‘ ‘갑’(전쟁기념관)은 ‘전쟁기념관의 판단으로 중대한 사항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경고 없이 바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임차인의 행위로 인해 전쟁기념관의 명예가 훼손됐을 경우’도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중대하거나’ ‘명예가 훼손됐다’는 기념관 측의 판단이 내려지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계약서 내용 중 용어 해석을 두고 양자 간에 이견이 있을 땐 전시관 측의 해석에 따르도록 돼 있으며, 만일 계약 내용을 두고 분쟁이 발생해 소송이 벌어지면 소송 비용은 모두 임차인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기념관 측이 자의적인 판단 아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도 대관한 임차인은 소송조차 쉽지 않도록 제한한 것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기념관은 계약서 상에 ‘기념관 측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도 ‘을’(사용자)은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고, 해지에 따른 ‘을’의 경제적 손실에 대한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못박고 있다. 반면 임차인(사용자)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약할 경우엔 사용 기간에 관계없이 대관료를 100%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 1년짜리 대관 계약을 체결한 뒤 하루 만에 해지해도 1년치 대관료를 모두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상당히 일반적이지 않고 이례적인 계약 조항을 담고 있다”며 “특히 예시나 가이드라인 없이 중대한 사항에 따라 계약을 해지하도록 하는 것은 약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석률 법무법인영진 변호사도 “계약 주체가 개인이 아닌 정부 유관기관이기 때문에 이런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상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부분”이라며 “‘독소 조항’을 이용해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법정에서 용인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쟁기념관 관계자는 “약관법에서도 ‘을’에게 너무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계약을 맺지 말라는 건 권고사항이지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해약금이나 사고로 인한 손해 발생시 책임 부분 조항은 다른 대관 기관도 비슷하게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다만 중대한 사항이라고 모호하게 명시한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법률 자문을 받아 보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전쟁기념관 측이 여전히 계약서 상에 전쟁기념관을 ‘갑’, 임차인을 ‘을’로 표기하고 있는 것도 논란을 빚고 있다. 관할부처인 국방부는 지난해 5월부터 계약서상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수용자’와 ‘공급자’로 대체하기로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수평적 계약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겠다는 군 당국의 약속을 산하기관이 무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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