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리포트)폭락場 `회복의 역사`

  • 등록 2008-01-23 오후 5:50:27

    수정 2008-01-29 오전 9:44:36

[이데일리 김국헌기자] 불안하시죠? 들고 있는 주식을 헐값에 내던지자니 아깝고, 들고 있자니 더 빠질까 불안하실 겁니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또 아시아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이 확산되면서 사실상 안전지대는 사라졌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바닥을 가늠하긴 힘든 일입니다. 국제부 김국헌 기자는 폭락했던 미국 증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회복했는지 보면 불안감이 가라앉을 거라고 합니다. 

투자자나 증시 속보를 전하는 기자는 지난 이틀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세계 증시가 급락, 폭락이 이어지다 보니 투자심리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습니다. 월가 금융회사 파산설부터 국내 증권사 직원 자살설까지 돌 만큼 투심이 흉흉하긴 흉흉한가 봅니다.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이 장기 약세장인 베어 마켓의 초기가 아닌가 하는 점일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인간이 답을 찾는, 쉬운 길은 과거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안한 투자자도 증시 역사에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진원지인 미국 증시를 들여다 보죠. 블루칩 중심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생긴지 11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다우 지수는 총 21번의 경기후퇴(recession)를 겪었습니다.

그 사이 치명적인 악재인 전쟁도 세계 1·2차 대전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 한국 전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수없이 많습니다. 세계 1차 대전이 벌어진 지난 1914년에 뉴욕증권거래소가 넉달 반 동안 문을 닫으면서 다우지수가 공백기를 가졌던 적도 있죠.

그러나 다우 지수 역사에서 `대폭락(Crash)`이란 단어를 붙인 시기는 1929년과 1987년 단 두 번뿐입니다. 대폭락에서 회복하는 기간은 얼마나 걸렸을까요? 
 
▲ 1929년 대폭락 당시 다우 지수 그래프. 당시 미국인들은 대출까지 받으면서 5년간 주식 투자에 열을 올렸다. 검게 칠해진 부분은 경기후퇴기. (출처: 다우존스 지수)

다우 지수는 미국 대공황 직전인 지난 1929년 10월 28~29일 사이에 각각 12.8%와 11.7%씩 빠졌습니다. 투매는 10월 한 달 동안 계속됐고, 바닥을 치는 데만 3년이 걸렸습니다. 대공황과 세계 2차 대전을 차례로 거치면서 대폭락 직전의 주가지수를 회복하는 데는 무려 25년이 걸렸습니다. 
 
▲ 1987년 대폭락 당시 다우 지수 그래프. 1987년 대폭락은 1929년과 다르게 곧바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학계는 아직까지 당시 투매를 촉발한 원인을 정확히 정의내리지 못했다. (출처: 다우존스 지수)

지난 1987년 10월19일 `블랙 먼데이` 폭락 당시에는 회복 속도가 훨씬 더 빨랐습니다. 당시 다우 지수는 하루 동안 무려 22.6% 폭락했지만, 2년 만에 붕괴 직전의 주가지수를 회복했으니까요.

이를 보면 증시는 갖가지 악재의 도전을 받아 응전하면서, 결론적으로 항상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갖가지 악재에도 주식시장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쟁도, 경기후퇴도, 인간의 주식 투자 권리를 뺐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다만 회복하기까지의 시간, 즉 바닥이 어디인가가 수명이 80년 안팎인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죠. 
 
찰스 킨들버거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이번 하락세가 이어지는 주식시장의 바닥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크게 보면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시작된 지점보다 더 밑으로 주가가 떨어질 때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투기적 광기로 증시가 몰락할 경우 주가는 투기가 시작했던 출발점보다 더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투자자들이 증시 역사에서 배워야 할 점은 하나 더 있습니다. 선진 금융을 뽐내는 미국 정부도 대폭락을 두 번이나 겪을 정도로 시장의 투기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시장의 힘이 얼마나 크고, 그속에 인간의 힘은 얼마나 나약한지를 알게하는 대목입니다. 
  
월가는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하며 미국 중앙은행을 상대로 시장을 구제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초를 다투며 증시에 비보를 타전하고 있는 언론의 역할은 시장의 비관적 시선을 부추기는 것보다 시장의 투기를 통제할 수 있도록 시장 감독 당국의 그물망을 견고히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월가의 탐욕을 고발한 <전염성 탐욕>이란 책에서 나온 말을 인용해봅니다. 주택시장 거품을 키운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공교롭게도 이렇게 말했더군요.
 
"전염성 탐욕이 우리 경제계를 휘어잡은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이 과거보다 더 커진 것은 아니다. 거리낌 없이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엄청나게 넓어진 것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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