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 성공했어'..어글리 슈즈 닮은 자동차

  • 등록 2019-05-08 오전 11:00:00

    수정 2019-05-08 오전 11:00:00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이준호 기자= 최근 패션 무드에선 어글리 슈즈가 유행이다. 하이패션의 리더로 자리매김한 배트멍 디자이너이자 발렌시아가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 바질리아(Demna Gvasalia)'는 발렌시아가 2018 S/S 런웨이에서 크록스를 올렸다. 5만 원 안짝에 살 수 있는 고무신 브랜드인 크록스 말이다. 그의 미학은 짧은 인터뷰에 담겨있다. “못생긴 게 진짜 멋있는 거다. 사람들이 내 옷을 못생겼다고 얘기한다면 그건 칭찬과도 같다.” 이 패션리더에게 영감받은 많은 디자이너들은 투박하고 괴상하게 생긴 신발을 앞다퉈 런웨이에 선보였다.

이름하여 어글리 슈즈다. 어글리 슈즈 등장의 첫 번째 이유는 시선 집중이다. 주목을 끌고 튀어서 소위 '인싸'가 되어야 인정받는 사회 풍조를 대변한다. 다음으론 관습의 파괴다. 패션만큼 정해진 규칙에 얽매이는 장르는 없을 것이다. 이를 T.P.O라고 한다. 시간(Time)과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옷을 맞춰 입어야만 했다. 어글리 룩은 그런 관습을 파괴한다. 등산복 바람막이에 정장 바지를 더해 어글리 슈즈를 신는다. 내가 편하면 그만인 걸 패션으로 여긴다.

어글리 슈즈의 특징은 아웃-솔(sole:밑창)이 대담하다. 층층이 겹을 이루고 있고, 형태는 도전적으로 돌출돼 있다. 컬러는 화려하다. 토캡(toe-cap:앞코)은 뭉툭하고 투박하다. 오죽하면 '어글리'라 이름을 붙였을까! 예전이면 아재라도 안 신었을 신발이 지금은 줄 서서 사는 시대가 됐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어글리 슈즈와 같은 모델들이 있다. 생김새는 아주 별로였지만, 되려 판매량이 많거나 훗날 다른 모델에 영감을 주는 경우다. 쉽게 말해 못생겨 성공한 차다.

살해 위협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BMW 7시리즈(4th)

BMW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수석디자이너로 뽑힌 크리스 뱅글. 그는 미국인으로서 고리타분하던 BMW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바꿨다. 그 시작이 바로 뱅글스 버트(bangle's butt: 뱅글의 엉덩이)로 유명한 7시리즈이다. 뱅글스 버트는 두툼해 엉덩이를 닮았다는 트렁크 리드 디자인의 조롱이었다. 기존의 날렵한 모습과는 다른 후덕한 디자인으로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하지만, 뱅글스 버트는 새로운 조형 예술이었다. 트렁크와 리어 휀더 파트는 서로 분리돼 있었다. 트렁크 리드는 마치 스포일러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면 분할을 통한 입체감 형성은 지금의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현대 그랜저 TG, 한국GM 말리부, 르노삼성 SM7 등 그 시대의 모델에서 뱅글스 버트가 아닌 디자인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최근에는 응용된 사례가 많다. 현대 8세대 쏘나타는 스포일러로 보이는 트렁크 리드가 특징이다. 뱅글스 버트가 사고의 확장을 불러일으킨 결과다.

캡 포워드 스타일의 시작

크라이슬러 LHS

1987년 미국 주식시장은 블랙 먼데이라 불리는 금융위기를 맞았다. 아메리칸모터스(AMC)를 비롯 람보르기니와 마세라티까지 소유했던 크라이슬러도 위기를 맞았다. 크라이슬러 부흥기를 이끌었던 리 아이아코카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플랫폼과 디자인으로 위기 탈출을 모색했다. 그것이 바로 LH 플랫폼이다. 엔진을 가로로 배치한, 미국차 역사상 전례 없던 방식이었다. 새로운 플랫폼은 새로운 디자인도 가져왔다. 캡 포워드(Cab-Foward)가 바로 그것이다.

캡 포워드는 가로배치 엔진을 통해 실내공간을 극대화하는 스타일이다. 미니와 같은 소형차에서 이미 구현된 섀시 구조였지만, 크라이슬러는 이를 대형 세단에 최초로 적용했다. 대륙인 미국에서 콤팩트는 불필요한 요소다. 크고, 길고, 널찍한 비례를 멋으로 여겼다. LH 플랫폼을 이용한 첫 대형 세단인 LHS는 전통적인 미국 스타일에서 비껴갔다. 후드는 짧았고, 앞 바퀴는 앞 문짝에 바짝 당겨졌다. 트렁크가 더 길어 보이는 기이한 비례였다. 결국 LHS는 2세대를 마지막으로 단종됐고, 크라이슬러는 캡 포워드 스타일을 버렸다.

반면, 넓은 실내공간을 효율성의 최고로 여기는 대중 브랜드에게 '캡 포워드' 디자인은 마법의 상자와도 같았다. 현대차는 '플루이딕 스컬프처'라는 디자인 랭귀지를 창조하면서 모든 라인업에 캡 포워드 스타일을 적용했다. 토요타, 르노, 쉐보레 등도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가로 배치 엔진에 앞 바퀴 굴림 세단은 대부분 캡 포워드를 적용할 만큼 대중적이었다.

쿠페형 SUV 스타일의 원조

쌍용 액티언

르노삼성 XM3는 이번 서울 모터쇼에서 기대가 높은 모델 중 하나였다. 쿠페형 SUV는 요즘 가장 핫한 스타일이다. 포르쉐에서도 카이엔 쿠페를 내놓을 예정이고, 애스턴 마틴도 뛰어들었다. 이미 람보르기니와 마세라티, BMW, 메르세데스, 아우디는 출시한 상태다. 후발 주자인 중국은 쿠페형 SUV 만큼은 한국보다 빠르다. 장안, 장성, 지리자동차가 이미 쿠페형 SUV를 출시했다. 중국차답지 않은 지리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링크 앤 코'에서도 쿠페형 SUV를 준비 중에 있다.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쿠페형 SUV 시장에 불을 댕긴 모델은 2000년대 중반 등장한 BMW X6이지만, 첫 모델은 아니다. X6 보다 2년 전에 등장한 쌍용차 액티언이 이 시장의 시초다. 쌍용은 전 세계 어글리 자동차 랭킹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이커이다. 로디우스가 대표작이지만, 액티언도 가끔 언급된다. 액티언의 디자인은 전위적이다. 마이너스 각도의 그릴에 상반되는 헤드라이트는 꽤 개성이 강하다. 약 4.4m의 작은 전장에도 불구하고 쿠페형 루프를 매끄럽게 구현했다. 하지만 우아하진 않다. 여기에 쌍용 = 변방의 차라는 네임 밸류까지 겹쳐 세계적인 호평을 얻질 못했다. 호평은커녕 어글리 리스트에 오르고 있으니 최초 쿠페형 SUV 스타일로서 자존심이 구겨질 만하다.

이젠 내 얼굴이 대세야

폰티악 아즈텍

폰티악 아즈텍은 정말 어글리 한 디자인이다. 각지고 투박한 패널은 종이접기를 해 놓은 것 같다. 전면은 한 술 더 떠서 시그널 램프가 헤드 램프 위에 위치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레이아웃이었다. 절벽으로 깍아내린 트렁크는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크램쉘 타입으로 열리는 방식은 실용적이다.

아즈텍은 모든 어글리 자동차 콘테스트에서 탑 랭킹에 들어가는 디자인이지만, 의외로 실용적인 디자인이다. 그러기에 지금은 아즈텍의 후예들이 넘쳐난다. 아즈텍의 마스크는 시트로엥 SUV들이 먼저 탐냈다. 지프 체로키도 따랐다. 개성 강한 닛산 주크도 이 부류의 하나다. 최근에는 현대차 SUV까지 가세했다. 코나, 싼타페, 팰리세이드다. 지상고가 높은 SUV는 헤드라이트 위치가 높다. 상대 차량 운전자에게 눈부심을 유발하는 민폐가 된다. 헤드램프 높이는 낮추고 시인성이 좋아야 하는 턴 시그널이나 DRL을 높이는 레이아웃은 상당히 실용적일 수 밖에 없다. 더욱 많은 메이커들이 이를 따라 해야 한다.

삼엽충으로 세계 1위 심장을 저격하다

현대차 YF 쏘나타

디자인은 튀어서 호불호가 강하면 스탠더드가 될 수 없다. 쏘나타는 한국의 스탠더드 모델이다. 한데 2009년 나온 6세대 YF 쏘나타는 괴기한 디자인으로 등장했다. 앞은 캡 포워드, 뒤는 패스트 백으로 최신 스타일의 보디를 갖췄지만 생김새 자체는 어글리였다. 헤드라이트는 단정치 못했고, 그릴엔 혐오스러운 주름이 잡혀 '삼엽충'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플루이딕 스컬프처라고 명명한 디자인 랭귀지는 곤충룩으로 조롱당했다. 급기야 기아 K5에 판매량이 추월당하기도 했었다.

비록 국내 소비자에겐 외면받았던 디자인이었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대박을 기록했다. 영원한 라이벌이자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토요타 캠리와의 판매량 격차를 최대로 줄였었다. 당시 토요타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었던 김준호 연구원(현 현대차 디자이너)에 따르면 “YF 쏘나타를 접한 토요타는 큰 충격이었다”고 전한다. 엔지니어링 중심의 토요타 디자이너들에게 YF 쏘나타는 파격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이후 토요타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디자인으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는 것을 포기한다. 비록 호불호가 강하더라도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각인되기 위해 지금도 변신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진짜 어글리

Dumpling Car. Erwin Wurm. 2018. 현대카드 스토리지

에르빈 부름은 오스트리아 미술가다. 그의 대표작엔 자동차를 뚱뚱하게 부풀린 란 연작이 있다. 포르쉐 911도 피해 가지 못했었다. 뚱뚱함은 죄의식이 아니라는 철학을 작품에 표현한다. 작년 한국 전시를 위해 두 달간 특별히 제작한 모델은 기아 레이다. 뚱뚱한 파란 '레이'에게 Dumpling(뚱뚱한 만두)이란 이름을 붙였다. 뚱뚱하다고 못생긴 게 아니고, 못생겼다고 나쁜 게 아니다.

어글리 디자인을 단순히 튀기 위한 패션의 경향으로만 볼 수 없다. 어글리 슈즈의 길게 튀어 나온 뒷 굽은 벗기 편하고, 울퉁불퉁한 아웃 솔은 지지면적을 넓혀 안정적 보행을 돕는다. 어글리하다고 평가내린 자동차들도 마찬가지다. 뱅글스 버트는 트렁크 공간을 넓혔고, 캡 포워드는 넓은 실내공간을 제공한다. 이상한 라이트 아키텍처도 내면엔 안전이 우선이었다. 멋지고 아름다운 것만이 보편적이면, 그것만큼 지루하고 진부한 것도 없다. 비록 지금은 어글리할지라도 빛나는 무언가를 담고자 노력한 것이라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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