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입구를 통과하자 탁 트인 시야가 시원스럽다. 야트막한 오르막 위에 펼쳐진 11만1511㎡ 부지에 12층 이하 건물 32개동이 드문드문 배치됐다. 퇴근 시간이었지만 관리자 외에 단지 안을 오가는 주민은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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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꼼수’ 분양이 발단이 됐다. 옛 단국대 터였던 이곳은 2006년 금호건설 컨소시엄(현 한스자람)이 부도난 시행·시공사의 사업권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개발 물꼬를 텄다. 당시 한스자람 측은 2007년 9월부터 민간 택지에까지 전면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그해 8월 분양 승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용산구청이 이를 반려하자 도중에 사업 계획을 바꿨다. 일단 5년 민영 임대로 공급한 뒤 추후 가격 규제를 받지 않고 분양 전환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분양가 책정 놓고 주민 불만 많아
결국 시행사인 한스자람은 분양에 동의하지 않은 분양대책위원회 가입자 330여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약 270가구에 대해서만 이달 초 분양가를 통보하고 올 연말까지 분양 신청을 받기로 했다. 분양가는 공급면적 87㎡형이 7억6000만원, 215~332㎡형이 27억~76억원에 책정됐다. 3.3㎡당 평균 5200만~5300만원 선이다. 2008년 3월 서울 성수동에서 3.3㎡당 평균 4535만원에 선보여 역대 최고가 분양 단지로 등극한 ‘갤러리아포레’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분양가가 비싸게 책정되면서 입주민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주민 이모(여·60)씨는 “분양가 얘기를 듣고 황당했다”며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고가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잘라말했다. 현재 284㎡형(85평형)에 거주하는 이씨의 경우 집을 분양받으려면 전세보증금 24억원에 약 18억원을 더 보태야 한다. 한 60대 부부는 “입주자 대부분은 입주 당시 분양가가 3.3㎡당 평균 4000만원 이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며 “분양가가 왜 이렇게 비싸게 책정됐는지 궁금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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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사인 한스자람에 따르면 현재 입주자 600가구 중 월세를 내는 집은 10여가구에 불과하다. 대부분 전세로 거주해 당장 집을 분양받지 않아도 추가 지출이 필요치 않다. 임대 기간 5년을 다 채운 2016년 1월까지 살다가 이후 분양을 받거나 집을 비우면 된다. 분양가가 3.3㎡당 7500만원에 책정됐다는 주민 박모(여·60)씨는 “손해볼 게 뻔한데 집을 분양받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분양 전환 대신 당분간 그대로 전세로 눌러앉는 입주민이 상당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업계에서는 이번 갈등이 집의 가치와 가격 전망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 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단지 인근 H공인 관계자는 “시행사가 매긴 분양가는 인근 유엔빌리지 안 고급 빌라(공급 330㎡ 기준 3.3㎡당 4500만~5000만원 선)의 거래가 수준”이라며 “희소성 높은 특수 주택(유엔빌리지)과 달리 일반 단지(한남더힐)의 경우 시세 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입주민들이 시행사 측의 높은 분양가 책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부자들도 아주 특수한 호화 주택이 아닌 한 굳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비싼 집을 깔고 앉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스자람은 분양가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일반 고가아파트에 비해 대지지분(아파트에 딸린 땅 지분)이 크고 단지 안 커뮤니티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등 독특한 장점이 많아 충분히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스자람은 올해 말까지 분양받는 입주민에게만 감정가 일부 인하, 공용관리비 5년간 면제 등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한스자람 관계자는 “올 연말까지 진행할 분양 전환 신청 실적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