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무리뉴, 무리뉴 축구다 (1) 성과로 말한다

  • 등록 2007-05-21 오후 7:09:48

    수정 2007-05-21 오후 7:09:48

[이데일리 김삼우기자] 다시 조제 무리뉴, 그리고 무리뉴 축구다.

한풀 죽는 듯 했던 무리뉴 축구가 또 세계축구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9일 온갖 악재 속에 거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침몰시키면서 첼시를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정상에 끌어 올린 무리뉴 감독의 힘 때문이다.

‘역시 무리뉴’라는 찬사와 함께 ‘첼시 축구는 지루해’라는 냉소가 엇갈리고 있지만 이제 무리뉴 축구는 세계 축구를 주도하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전 세계 축구 전문가와 지도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핌 베어벡 한국 대표팀 감독 또한 세계 축구를 이야기할 때면 단골메뉴로 첼시 축구를 예로 든다. 그가 인식하는 첼시 축구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역습의 대명사다. 물론 그는 첼시 축구보다는 더 공격적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축구를 선호한다.

하지만 지도자로서는 젊디 젊은 만 44세의 나이에 백전노장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을 울리고 웃기는 무리뉴 감독의 지도력은 전 세계 축구 지도자들이 따라가고 싶어하는 그것이다.

▲ 실력과 성과로 말한다

무리뉴 감독이 돋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실력과 성과 때문이다. 지난 2000년 포르투갈의 명문 벤피카에서 처음 감독 생활을 시작한 그가 지금까지 거둔 성적은 화려하다 못해 경이적이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날리는 독설로 ‘축구의 적’이라는 악평을 얻기도 했지만 이는 그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벤피카에서의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시즌 시작 4주째에 전격 벤피카의 지휘봉을 잡고 라이벌 스포르팅 리스본을 3-0으로 대파하는 등 남다른 지도력으로 인기를 모았으나 시즌 중 구단주가 교체되면서 엇박자가 났다. 시즌 중간 그는 새 구단주에게 계약연장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체없이 사표를 던졌다. 때문에 그가 벤피카 벤치를 지킨 것은 9경기에 불과했다.

차분하게 때를 기다리던 그는 2001~2002 시즌 이름없는 라이리아로 둥지를 옮기면서 그의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포르투갈리그에서 그저 중위권에 만족하던 라이리아를 구단 사상 최고인 리그 4위까지 끌어 올린 것이다.

이런 무리뉴 감독을 눈여겨 보던 포르투갈의 명문 포르투가 마침내 그를 잡았다. 시즌 중이던 2002년 1월 옥타비오 마차도 감독을 경질하고 무리뉴에게 대신 사령탑을 맡겼다. 당시 포르투는 리그 타이틀 경쟁에서도 밀리고 유럽 클럽 대항전 출전도 물건너 가 팀 분위기가 가라앉을대로 가라앉은 상황. 하지만 무리뉴가 감독직에 오른 뒤 15경기에서 11승2무2패의 놀라운 성적을 올리면서 리그 3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무리뉴 감독은 다음 시즌을 약속했다. 무리뉴 지도자 인생의 활짝 꽃 피기 시작한 때다. 약속대로 무리뉴는 포르투를 2002~2003, 2003~2004 시즌 연속 포르투갈리그 정상으로 인도했다.

이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로 거액을 받고 스카우트된 뒤에는 2004~2005, 2005~2006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2연패하며 또 다른 역사를 썼다. 4회연속 국내리그 제패의 진기록을 세운 것이다. 재임 3년 동안 정규리그, FA컵, 칼링컵, 커뮤니티 실드 대회 등 잉글랜드의 모든 국내 대회를 제패한 것도 주목할 수 있다.

비록 첼시에서는 연거푸 쓴맛을 봤지만 포르투를 이끌고 2003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2004년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모두 정복, 유럽축구에서도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이뤘다. 이 과정에서 2004년과 2005년 연속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하는 ‘올해의 세계 최고의 감독’에 뽑힌 것은 당연할 결과였다.

▲ 초라했던 선수 시절, 인고의 지도자 수업 시절

이런 무리뉴 감독도 선수 시절은 초라했다. 그의 아버지 펠릭스 무리뉴가 포르투갈의 프로팀 비토리아 세투발에서 GK로 활약할 당시 세투발에서 태어난 무리뉴 감독은 그곳 유소년 클럽에서 처음 축구화를 신었다. 그러나 선수로서의 자질은 없었던지 몇몇 이름없는 클럽의 유스팀을 전전하다 23세때 선수 생활을 접었다. 좌절과 절망감에 빠질 법도 했지만 그는 축구 지도자로서 가능성을 찾았다.

현역에서 물러난뒤 지도자로 제 2의 인생을 연 그의 아버지의 길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어릴 때부터 나타났다. 아버지가 세투발의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던 15세때 일이다. 아버지는 다음 경기 상대팀의 전력 탐색을 하고 싶었으나 코칭스태프 회의 때문에 따로 코치를 보낼 수 없게 되자 무리뉴를 대신 파견했다. 다음 날 아버지는 무리뉴가 내민 분석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상대 팀의 강점과 약점은 물론 우리 팀의 대응책까지 상세하고 정밀하게 분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리뉴 또한 경기의 흐름을 읽어내는 그의 남다른 자질에 자신감을 얻게 됐음은 물론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오만으로 비치는 자신감은 당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선수보다는 지도자가 자신의 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 차근차근 그의 꿈을 실현해 나갔다.

리스본의 한 스포츠 문화 대학 체육교육과에서 스포츠 방법론을 전공한 그는 우선 졸업 후 고등학교 축구팀 감독 생활을 하다가 90년대 초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와 비토리아 세투발 등 작은 팀에서 코치로 프로 지도자 인생을 준비했다.

이런 그에게 전기가 찾아왔다. 당시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리스본을 이끌던 영국 출신의 명장 보비 롭슨과의 조우였다.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롭슨 감독의 통역으로 발탁된 그는 롭슨을 따라 포르투, 1996년에는 FC 바르셀로나로 옮겨다니면서 코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다. 흔들림 없는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적극적이고 빈틈없는 성격이 그를 원래 이상의 위치로 올라서게 한 바탕이었다.

FC 바르셀로나에서는 롭슨 감독 후임으로 온 루이스 반 갈 감독 밑에서 2년간 더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다. 요즘 첼시 축구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바르셀로나, 그리고 네덜란드 축구를 코치 수업 시절 이미 경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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