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피용익기자] 미국이 연합군 임시행정처(CPA)를 해체하고 이라크에 정권을 이양했다고 밝혔지만 이라크 내의 지정학적 불안요인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종족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 지역의 오랜 종족 갈등은 정권이양을 계기로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랍족과 쿠드르족의 갈등이 여전한 상태인 데다 같은 아랍족 가운데서도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다시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족·종족간 갈등 여전
이라크 상황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이라크 주류인 아랍족과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간의 갈등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2500만 이라크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소수파 쿠르드족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독립`이기 때문.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정권 하에서 핍박을 받아 온 쿠르드족은 연방제를 통한 자치권 보장을 오랫동안 주장해 오고 있는 반면 아랍족과 주변 중동국들은 쿠르드족의 독립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이에 따라 물과 기름으로 비유되는 쿠르드족과 아랍족이 단일한 국가를 이루는 것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렇다고 쿠르드족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다. 쿠르드 지역을 둘로 나누면 쿠르드민주당(KDP) 지역과 쿠르드애국동맹(PUK) 지역으로 구분된다. 두 파는 내부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종족 간의 내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랍족 또한 복잡한 구조다. 현재 반미주의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이 다시 불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협력 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두 파가 정권 이양 후에도 이같은 모습을 보일 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오랜 기간에 걸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반목이 다시 불거지고, 여기에 쿠르드족의 독립 요구까지 더해진다면 이라크 안정화는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라크 임시정부 난항 예상
이같은 상황에서 구성된 임시정부가 이라크 국민들을 규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게 지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니파 대통령-시아파 총리 체제에 쿠르드족이 요직을 두루 맡게 됐지만 이로써 오랜 기간 지속돼 온 복잡한 갈등이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
알 야와르 대통령은 지난 1일 "아랍계와 쿠르드족, 그리고 다른 민족 모두는 고귀한 영토를 형성하는 한 부분들"이라며 이라크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했으나 이같은 호소가 받아들여질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정권 이양 이후 이라크 각 종파 간의 갈등이 본격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다지 나쁜 상황은 아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자신들의 자치권이 빠졌다며 반발했던 쿠르드족이 결의안을 수용키로 했고, 강경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는 과도정부 출범을 사실상 지지했다. 그러나 이는 국제여론을 염두에 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갈등 해결의 실마리로 보기는 어렵다.
걸프전 당시 노먼 슈워츠코프 사령관의 참모를 지낸 마이크 터너 예비역 공군대령은 최근 뉴스위크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라크의 다양한 인종과 종교간 대립을 고려할 때 이라크에서 민주국가를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 3개 국가를 수립한뒤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