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선 남녀의 ‘착한 멜로’

‘내 사랑 내 곁에’
  • 등록 2009-09-17 오후 4:16:00

    수정 2009-09-17 오후 4:16:00


 
[경향닷컴 제공] 가족영화의 결말이 ‘안 봐도 비디오’이듯이 <내 사랑 내 곁에>는 <너는 내 운명> <그 놈 목소리>를 연출한 박진표 감독의 의도가 너무나도 뻔한 작품이다. 몸이 점차 마비되어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남자와 그 옆에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함께 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안 봐도 대충 얼개가 그려진다. 예상대로 영화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정해진 비극의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관객은 모공에 번지다가 눈가에 흘러내리는 끈적거리는 액체에 감정을 스르륵 놓는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종우(김명민)는 어머니의 장례식날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랐던 장례지도사 지수(하지원)를 만난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지고 지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을 가졌다며 프러포즈하는 종우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종우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되고 지수는 “그를 꼭 살려내겠다”며 고군분투한다. 이제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종우는 차갑게 지수를 떠나보내려 결심한다.

기적도 꿈도 없는데 살고 싶은 욕망은 거세되어지지 않는 산송장 같은 삶. 사랑이라는 무한한 궁극에도 서서히 지쳐가는 두 사람. 어느새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에 남자는 두렵고 외로워진다. 욕심이고 동정이라는 주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여자 역시 서서히 죄여오는 절망에 눈물로 버틴다. 영화는 이런 극한의 감정을 당겼다가 놓으면서 신파 멜로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짧은 순간마저 눈물로 승화하려고 최대한 애쓴다.

병마를 겪는 이들의 애절한 삶을 뛰어난 관찰력으로, 그리고 애정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아쉬움 또한 적지 않다. 매끈한 외양에 비해 정해진 결말의 도식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픔에 공감은 하지만 그 슬픔의 강도가 세어질수록 외부자의 시선으로는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관성적이고 반복 재생되는 대사가 오고가고 ‘슬픈 멜로’의 착하지만 뻔한 공식에서 삶과 이별의 통찰이 엿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결말에 반감이 솟는다면 객기일까.

영화는 기본적으로 종우와 지수라는 남녀의 삶과 죽음, 애정과 고통, 그리고 이별을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유사한 증상의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이 모여 있는 6인 병실의 풍경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9년 동안 뒷바라지에도 끝내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따귀를 때리는 할머니. 퇴직금까지 입원비에 틀어넣어 빈털터리가 되어 형의 안락사를 부탁하는 동생. “죽고 싶다”는 딸 앞에 한없이 눈물만 흘리는 엄마.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남편. 오래도록 병원에 누워있는 가족을 돌보는 그들의 고통은 ‘지옥 같은 삶’이다.

한 일본영화를 보면 “버리고 싶지만 결코 버리지 못하는 것이 가족이다”는 대사가 있다. 가족이라는 얼개가 얼마나 단단한 고리로 운명처럼 얽혀 있는가를 말해준다. 무조건적인 희생이나 헌신이 가능한 관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 가족이다. 그들이 가족이 아니라면 누가 그 오랜 시간, 절망의 낭떠러지 위에 서 있을 것인가.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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