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가 8세 이전인 원손 때 쓴 한글 편지가 최초로 공개됐다. 외숙모인 여흥 민씨에 보낸 안부 편지다(사진=국립한글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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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상풍의 긔후 평안O신 문안 아O고져O라오며 뵈완 디 오래오니 섭〃 그립O와 OO다니 어제 봉셔 보O고 든〃 반갑O와’(서릿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뵌 지 오래되어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편지 보니 든든하고 반갑습니다.)
필체가 어린이가 쓴 듯 서툴고 행과 열도 들쑥날쑥하다. 이 한글 편지를 쓴 주인공은 다름 아닌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1752~1800).편지 끝에 원손(元孫)이라 쓴 것을 고려하면 세손 책봉 이전인 1759년 2월 이전에 쓴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국립한글박물관 고은숙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정조가 여덟살 전에 썼다는 얘기다. 이 편지는 어린 정조가 큰 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안부 편지다.
| 정조가 1793년 12월 국동 홍참판에 보낸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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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어렸을 때 필체를 비롯해 한글로 쓴 편지 묶음이 최초로 공개됐다. 16점의 편지가 담긴 정조어필한글편지첩이다. 애초 정조가 쓴 이 편지첩은 3점만 알려졌는데 16점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조의 한글 편지 가운데 실물이 남아 있는 것도 정조어필한글편지첩이 유일하다. 이번에공개된 정조의 한글편지 묶음 가운데는 세자 시절 및 왕 즉위 후 쓴 편지가 포함됐다. 정조의 한글 필치 변화상을 그의 나이 변화에 맞춰 볼 수 있고, 왕실 편지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정조어필한글편지첩과 더불어 ‘곤전어필’ ‘김씨부인한글상언’등 18세기 왕실 관련 한글 자료를 19일 공개했다.
이 가운데 ‘곤전어필’은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 김씨(1753~1821)가 직접 한글로 쓴 소설이다.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조카인 김종선에게 우리말로 번역하게 한 다음 쓴 것.
특이한 건 ’김씨부인한글상언‘이다. 사대부 여성이 1727년 10월 영조(1694~1776)에게 한글로 쓴 장문의 정치적 탄원서라서다. 이 탄원서는 서포 김만중의 딸이자 신임옥사 때 죽임을 당한 이이명의 처 김씨 부인이 손자와 시동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영조에게 올린 것이다. 정자로 정성 들여 쓴 이 상언은 크기가 무려 가로 160·세로 81.5cm에 달한다. 정치적 격변기에 일어났던 당쟁의 모습을 사대부 여성의 절박한 심정을 통해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이 몸이 만 번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하고 부월에 엎드리기를 청하니, 바라오니 천지부모(天地父母, 왕 즉 영조)께서는 특별히 원혹한 정사를 살피십시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자료들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이 세 편의 왕실 관련 한글 필사본을 쉽게 풀어 ‘소장자료총서’란 이름으로 21일 발간한다.
| 서포 김만중의 딸로 신임옥사 때 죽임을 당한 이이명의 처 김씨 부인(1655~1736)이 손자와 시동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영조에 올린 한글 탄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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