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증시 다시 읽기)풍운아 황광위와 시대병

  • 등록 2010-05-20 오후 8:40:41

    수정 2010-05-20 오후 8:40:41

[이데일리 상하이지사] "베이징역에 내려서 지하에 있는 여관에 묵었다. 여관을 찾기 위해서 1위안을 내고 인력거를 탔는데, 알고 보니 그 인력거는 단지 역 주변을 한바퀴 돌았을 뿐이었다. 베이징에서의 둘째날, 여관을 나서서 조금 걷다보니 베이징역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너무나도 커보였다". `시골소년` 황광위는 베이징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 4000위안으로 시작한 궈메이..`박리다매` 전략으로 승부수

황광위는 1969년 5월, 광동성 샨토우(汕頭)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때문에 넝마주이를 하기도 했던 황광위는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16살때 학업을 중단하고 4살위인 형과 네이멍구(內蒙古)로 떠났다.

1986년, 17세 소년이었던 황광위는 네이멍구에서 모은 4000위안과 빌린 돈 3만위안으로 베이징 치엔먼(前門) 인근에 100㎡짜리 가게를 열고 궈메이(國美)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황광위 형제는 처음에는 의류를 팔다가 나중에는 가전제품을 취급한다.
 
1987년 1월1일, 황광위는 정식으로 궈메이전기(國美電器)라는 상호를 사용한다. 당시 제품만 확보하면 손쉽게 팔 수 있었던 `판매자 우위` 시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황광위는 `박리다매` 전략을 택했다. 공급이 열악한 상황에서 다른 가게들이 물건을 비싸게 팔아 높은 마진을 남기던 것과는 반대되는 판매전략이었다.

광고도 적극 활용했다. 1991년 황광위는 베이징 서민들이 즐겨보는 북경만보(北京晩報)의 지면 사이에 `가전제품을 사려면, 궈메이로 오세요(買電器, 到國美)`라는 카피와 함께 각종 가전 제품의 가격을 함께 실었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제품을 판매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면사이의 새로운 광고공간을 활용했다.

당시 국영 상점들의 인식은 안 팔리는 제품만 마지못해 광고를 할만큼 낙후돼 있었다. 이런 상점들이 궈메이의 광고전략을 흉내내려고 했지만, 이미 황광위가 매회 800위안의 낮은 가격으로 지면사이 광고를 매점해 버린 후였다.

황광위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지면사이 광고는 성공작이었다. 광고후 궈메이에는 많은 고객들이 몰리며 재고가 동날 정도로 제품이 팔려나갔고, 그의 사업도 본궤도에 오른다. 황광위는 여세를 몰아 다른 곳에도 상점을 열기 시작, 1993년에는 가전제품 판매점포가 7개로 늘었다.

◇ 홍콩증시에 우회 상장..2004년 중국 최대 부호 등극 
 
궈메이는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전역으로 확장을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궈메이의 증시 상장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당시 중국 증권시장에는 그럴싸한 민영기업이 있지도 않았으며 수많은 국유기업들이 이미 상장을 대기중인 상태였다.

2000년 당시 31세의 황광위는 겨우 발걸음을 시작한 중국 증시 대신 유수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였던 홍콩증시로 눈길을 돌렸다. 같은 광동성 출신의 우회상장 전문가인 짠페이쭝(詹培忠)을 알게 되면서 황광위는 금융시장을 활용하는 능력도 높여나갔다.

황광위는 우회상장의 절차를 하나하나 밟아나갔다. 2003년 구조조정을 통해 베이징, 텐진 등지의 18개 자회사와 94개 양판점을 모회사인 궈메이에 합병한다. 자회사인 베이징 펑룬이푸(鵬潤億福)가 궈메이 지분 65%를 소유하고, 나머지 35%는 황광위 자신 명의로 보유했다.

2004년 4월, 황광위는 펑룬이푸의 궈메이 지분 65%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한 궈메이 지주의 자회사인 오션 타운(Ocean Town)에 매각하고, 그해 7월 중국펑룬(鵬潤)이 오션 타운을 인수하면서 마침내 궈메이는 홍콩증시 우회상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7월29일, 홍콩증시에서 궈메이는 우회상장 첫날 종가 6.6홍콩달러를 기록한다.
 
▲ 2010년 궈메이 주가 그래프

궈메이가 홍콩증시에 상장한 그해 황광위는 중국 부호 순위를 매기는 후룬리포트(胡潤百富)에서 105억위안의 재산으로 중국 최대 부호로 선정됐다. 당시 황광위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대부호로 선정되면서 자신의 재력이 드러나게 된 사실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중국 갑부로 지목된 사실이 두려울 것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 재력과 권력의 결합..부패 순환고리 형성

중국에서는 개혁 개방 실시후 30여년동안 200명이 넘는 기업가가 각종 혐의로 인해 체포돼 몰락의 길을 걸었다. 많은 돈을 벌어서 생긴 문제라기 보다는 상장과 인수합병 등을 통해 재력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와 각종 법제도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다 뒤탈이 났기 때문이다.
 
재력은 권력을 바라봤고, 권력도 재력을 그냥 방치하지는 않았다. 일부 고위 관료들은 법제도상의 허점을 이용, 부호들과 특수한 이익집단을 형성해 왔다. 낙마한 부호들의 스캔들을 분석해보면 공무원이 관련되지 않은 사건이 전무하다시피하다. 황광위 사건에서도 공안부 경제범죄수사국 부국장 샹화이주(相懷珠), 광동성 정협 주석인 천샤오지(陳紹基)와 선전시장 쉬쭝헝(許宗衡) 등 고위층 인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중국의 유명 경제학자인 우징롄(吳敬)은 공무원들의 부패는 중국의 불완전한 개혁과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행정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돼 시장의 경제활동을 간섭하고, 공무원들은 권력의 힘을 빌어서 민간부문과 이익다툼을 한다는 것이다. 황광위 스캔들은 이같은 `시대병(時代病)`의 축소판으로 볼 수도 있다.

(글쓴이 김재현 : 상하이 교통대학 기업금융 박사과정, 前 우상투자자문 연구원
email: zorba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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