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위안부’ 문제,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기대와 우려

올해 30주년 맞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새 국면
日, 배상 판결에도 '무시'…국제법정 '최후의 선택'
ICJ 회부안, 셈법 복잡…한·일 과거사 '불똥' 우려
  • 등록 2021-02-26 오전 11:00:00

    수정 2021-02-28 오전 9:08:03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가 논문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매도한 뒤 ‘위안부’ 문제가 격랑에 휩싸였다. 논문 비판 성명이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의 입맛에 맞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학문적 자유’로 옹호하고 나선 것.

오는 8월 14일이면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내에 알려진 지 꼭 30년이 된다. 이용수 할머니가 “김학순 언니가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고 싶다”며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해 달라고 공개 요청하면서 올해 30주년을 맞은 위안부 인권 운동이 새 국면을 맞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위안부’ 배상 판결 승소했지만…日 항소하지 않고 무시

국제법학계에서는 이 할머니가 “마지막 소원”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청한 위안부 ICJ 회부안을 놓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을 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ICJ는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이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 193개국이 ICJ의 판결을 따를 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ICJ에 한 번도 소송을 해 본 경험이 없다. 정부도 그동안 내부적으로 파악만 했고 이번에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ICJ 회부안이 국내 위안부 인권 운동 30년 역사상 처음으로 공론화된 것만 봐도 그만큼 실효성이 낮다고 판단했다는 방증이다.

기본적으로 ICJ는 양국 간 사전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넘기는 것은 비정상적인 예외 사례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의 동의 없이 위안부 문제를 넘기면 ICJ는 보도자료 배포 외에는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다. 우리가 제출한 소장이 사건으로 정식 등록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 국제법학자는 “외교적 작업이나 법적 근거 없이 ICJ에 일방 회부하자고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오히려 진지한 문제 해결 의지 표현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할머니가 대표로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추진위)’가 국제법에 따라 국제법정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자고 제안한 것은 이를 최후의 수단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도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며 “이제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일본 정부는 항소도 하지 않고 무시했다. 이 판결의 파장에 이 할머니가 원고인 재판은 법원이 추가적인 심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지난달 13일 예정됐던 1심 선고가 미뤄졌다.

이에 추진위는 “일본 정부는 그냥 일개 한국 국내 법원의 판결로 여기고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위안부 문제를 국제법에 따라 국제법정에서 다룰 것을 제안했다.

이제 시간이 없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 중 최고령자였던 정복수 할머니가 지난 12일 별세하면서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15명이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눈사람이 놓여져 있다. (사진=뉴시스)


이용수 할머니 측 “충분히 승산”…패소하더라도 일본 만행 기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ICJ에 회부해 얻는 이득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추진위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ICJ에 일본인 재판관이 1명이 있지만, 한·일 양국 간 법적 분쟁이 회부되면 한국도 임시 재판관 1인을 임명할 수 있다. 우리 입장을 지지하는 국제법 전문가를 이 자리에 앉히면 일본 출신 재판관보다 더 잘 해낼 수도 있다고 본다.

또 추진위는 2014년 호주가 일본의 무리한 고래잡이를 문제 삼아 제기한 ‘국제포경규제협약 위반’ 소송(호주 승소), 2019년 4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의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관련 사건(한국 승소) 등 일본의 패소 사례를 꼽으며, ICJ에서 한국이 특별히 불리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추진위 쪽 법률자문을 맡은 신희석 연세대 법학연구원 박사는 “(국내 법원의 판결은) 금전배상을 명령하는 것에 그쳐 일본의 진정한 법적 책임 인정, 역사교육 반영 등 피해자 인권 구제는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만약 ICJ에서 패소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과거 행한 전쟁범죄와 전시 성폭력 사실을 법적으로 기록상 명확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1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韓 주도 ICJ 회부, 득보다 실 多…다른 과거사 문제 ‘불똥’ 우려

반면 국제법학계는 ICJ 회부안이 양국 합의로 되더라도 우리에게 전략적으로 유리한지 불명확하다고 보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유엔의 보고서 등으로 이미 국제사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30년 동안 쌓인 피해자의 ‘증언’이 있고 생존자도 있다. ICJ에서 사실관계를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얻는 것 보다 잃는 게 더 많아 우리가 적극적으로 응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일본이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1965년의 ‘청구권협정’, 주권 국가는 다른 나라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 등을 내세워 “한국은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프레임 덫에 걸릴 위험이 크다. 이 점은 추진위도 “절차적으로는 개인 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포기됐고, 한국 법원은 일본의 주권면제를 존중해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자들의 개인 배상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으로 포기되고, ‘일본의 주권면제를 존중해야 한다’는 판단을 허용한다면 그 폐해는 실로 심각할 것”이라며 “사죄, 진상규명, 역사교육, 기념관 설립 등의 비금전적 법적 의무는 소멸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도출해내지 못한다면, 피해자들이 얻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지금까지의 성과(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2021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일본군 위안부 판결)까지를 모두 무(無)로 돌려버리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법원의 확정 판결이 효력이 있는지를 우리 정부가 나서서 다른 기관에 물어보게 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독도 등 다른 한·일 간 과거사 문제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일본은 1950년대부터 일관되고 집요한 방식으로 독도 문제 ICJ 회부를 주장해왔는데 결국 일본의 독도 ICJ 회부론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추진위는 “별개 사안인 독도 문제까지 ICJ에 넘길 법적 의무는 전혀 없다”며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국제법학계 관계자는 “우리가 (일본이 꺼리는 문제를) ICJ에 회부하자고 설득하면 결국 일본 역시 (한국이 분쟁화를 꺼리는) 독도문제를 ICJ에 회부하자고 주장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며 “우리 정부가 선제로 ICJ에 해당 사건을 갖고 갈 이유는 없으며, 일본이 제소할 때 깊이 있는 고민과 철저한 준비 하에 필요하다면 한국이 같이 응소하는 것을 고려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독도(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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