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사는 23일 19대 대통령선거 후보 배우자 방송연설에 나서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쓴소리를 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그런 사람들이 돼버린 것 같다”며 “아닌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사회가 똑바로 굴러가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남편은 그동안 많은 말을 했지만 그 중에 거짓말, 틀린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면서 “남편은 해야할 말을 했을 뿐이다. 그 누구도 겁을 내서 하지 못하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기에 오늘의 홍준표가 있는 것 아닐까요”라고 강조했다.
이 여사는 “홍준표만의 방식, 홍준표만의 스타일이 있다”며 “남편을 바꾸려하기보단 남편의 뜻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칠어 보이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이 저희 남편”이라며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만 틀린말, 허튼소리 안하는 강직한 사람”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저희 남편은 돈도 없고 빽도 없이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실력과 깡으로만 버텨야했던 사람”이라며 “거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빵빵하고 잘나가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무시 받지 않고 버티기 위해 저희 남편에게는 고집과 신념이 유일한 무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 우리 국민들처럼, 가진 것이 별로 없는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 방식이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연설내용 전문
국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통령 후보와 38년째 함께 살고 있는 이순삼입니다. 오늘 저는 저희 남편 이야기를 조금 해 드리려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요즘 정말 살림살이하시기 팍팍하시죠? 장을 보러 시장에 가보면 어찌나 물가가 쑥쑥 오르는지. 별 것 산 게 없는 것 같은데도 어느새 10만원을 훌쩍 넘기곤 합니다.
자식들 키우기도 참 힘드시죠. 평생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아껴가면서 공부 시켜서 다 키워놨는데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을 못하면 부모 마음이 참 아프죠. 어디 가서 제가 일자리 구해다 줄 수만 있으면 뭐든 하겠다는 그 부모 마음, 두 아들 키우는 저도 그 마음을 잘 압니다.
요즘 또 미세먼지까지 많아서 어린아이들 키우시는 엄마, 아빠들이 얼마나 걱정이 많으실 지도 짐작이 갑니다. 왠지 건강은 나빠질 것 같은데,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지요.
남편이 정치인이고, 또 도지사도 하고 그러다보니까 저도 옆에서 남편이 하는 걱정을 같이 하곤 합니다. TV보다가 힘드시고 어려운 분들 나오면 “아유 어떻게 하면 좀 저분들 잘 살게 해볼까” 생각도 하고 그렇습니다. 38년을 같이 살았더니 저까지 그렇게 돼버렸네요. 비록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지만, 대통령 후보의 부인으로서, 20년 넘게 정치를 한 사람의 부인으로서 여러분께 괜스레 송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우리 남편 홍준표라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은행원이었고, 남편은 고대 법대 3학년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서 알았는데, 남편이 제가 마음에 들어서 계속 은행에 올 핑계거리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그때 남편이 참 순수하고 해맑은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주변 지인을 통해서 남편이랑 정식으로 소개를 받아 만났는데 저한테 대뜸 “나는 돈도 없고 군대도 안 갔다 왔지만 당신이 좋다. 내가 마음에 들거든 수요일에 도서관 4층으로 나와라” 라고 하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참 어이가 없죠?
그런데 저는 그 당시 남편의 용기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를 찾아가, 지금까지 이렇게 인연을 맺고 살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그 때 저의 선택을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
저희는 지하단칸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식이요? 그런 건 꿈도 못 꿨죠. 가난한 고시생에 무슨 돈이 있었겠어요. 하루하루 반찬거리 마련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편이 정말 진실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가진 건 없어도, 늘 꿈을 품고 사는 그런 남자였기에 저는 믿고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혼 생활을 한지 3년이 흐르고 드디어 남편이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못 올렸던 결혼식도 올리고, 남편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홍준표의 아내로서의 삶이 시작됐고 오늘 여기까지 함께 오게 됐네요.
사법고시만 합격하면 평생 편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검사로 발령받은 우리 남편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희 남편은 잘못된 게 눈에 보이면 반드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희 남편이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찰 내에서는 눈엣가시였나 봅니다.
남편도 인간이기에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제 앞에서는 티를 잘 안 냈지만 남편이 얼마나 고생하고 힘들어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도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남편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은 제가 “좀 굽힐 줄도 알아야 된다”고 해도 꿈쩍도 안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남편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나온다는거에요. 드라마 모래시계에 고현정씨가 나왔길래 제가 “정말로 나 만나기 전에 저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었냐”고 추궁도 하고 그랬습니다. 조금 샘이 나더라구요. 남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는데 1년을 넘게 제가 좀 괴롭혔습니다.
모래시계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을 해서 저희 남편이 유명해지긴 했는데, 그게 오히려 검사로 일하기에는 안 좋았었는지 갑자기 검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정치에 입문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참 우리 남편 따라 인생이 롤러코스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정치에 입문한 남편, 그 성격이 어디에 가겠습니까? 힘 있는 정치인들한테 쓴 소리도 하고, 한 판 붙을 때는 제대로 붙기도 하고. 모래시계 검사 남편이 모래시계 정치인이 됐더라고요. 누구 저격수, 누구 저격수 하더니 어느새 네 번을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남편이 정치인이 되니 저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지역구 행사도 다녀야 하고, 여기저기 인사드릴 곳도 많았습니다. 살림하랴, 애들 키우랴, 남편 내조까지 하랴. 정말 저도 힘들고 바빴지만 그래도 참 즐겁게 저도 같이 일해왔습니다.
왜 그랬는줄 아십니까? 강자 앞에선 당당하고, 약자 앞에선 고개 숙이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남편을 돕고, 힘을 북돋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남편, 원내대표에 당대표까지 하고 결국엔 자기 고향에 내려가서 도지사가 되었습니다. 힘든 길을 걸어왔지만, 국민께서 알아봐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적,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서 고향을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저희 남편이, 도지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뭉클했습니다. 특히 남편은 부모님 산소를 자주 갈 수 있어서 참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더 신나게, 더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남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지사 되면 좀 조용히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못했던 문제들을 하나둘씩 손을 대더니, 어느새 남편이 ‘욕먹는 도지사’가 됐더라고요.
하지만 남편은 절대로 굽히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자기 고향을 더 잘 사는 고장, 더 부유한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제가 욕먹는 일은 그만 좀 하라고 말하면, 욕먹는 도지사가 일 잘하는 도지사, 개혁하는 도지사라고 저에게 몇 번을 얘기했습니다.
특히 남편은 가난한 사람한테 더 많은 복지가 가야 된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워낙 가난하게 자라서 그런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꼭, 더 잘 살게 해줘야 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입니다.
길을 가다가 바닥에 앉아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를 보면 꼭 사주곤 하는 그런 남편이에요. 돈은 한정돼 있는데, 충분히 여유가 있는 사람들한테도 복지 혜택이 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늘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무상급식과 관련해서도 저희 남편은 소신을 갖고 일을 했습니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가 집요하게 저희 남편을 헐뜯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꿋꿋이 자기 도정 철학을 밀어 붙이는 그런 남편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희 남편이 애들 밥 먹는 것 갖고 그런다고 욕하시는데 정말 그런 거 아닙니다. 국민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내는 세금을 대신 집행하는 도지사로서, 그 돈이 어떻게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고 돈을 줄 수는 없다는 강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저소득층 자녀들한테 참고서라도 한권 더 사주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거, 저희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슬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가난해도,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잘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는 일념으로 평생 정치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소신 때문에 저희 남편은 그 많은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경남 도민들께서 저희 남편의 충정을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무상급식 관련 여론조사 결과, 저희 남편의 결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더 많이 나와서 참으로 감사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저희 남편은 도지사 퇴임식 때 펑펑 울면서 퇴임사 했습니다. 다들 기억하시죠? 눈물이랑은 거리가 먼 남자인데, 그날은 정말 목 놓아 울더라고요. 지켜보는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열심히 했고, 당당하게 일 했기에 흘릴 수 있는 눈물입니다. 더 어려운 선거를 하러 떠나는 저희 남편한테 많은 분들이 박수와 위로를 보내줬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남편을 강한 사람, 거친 사람으로 알고 계십니다. 뭐 완전히 틀리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겁니다. 늘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서 굽히지 않고 꼿꼿이 마이웨이를 가기 때문에 강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희 남편이 왜 그렇게 강한 이미지를 갖게 됐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희 남편은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실력과 깡으로만 버텨야 했던 사람입니다.
거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빵빵하고 잘나가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무시 받지 않고 버티기 위해 저희 남편에게는 고집과 신념이 유일한 무기였던 겁니다. 그렇게 저희 남편은 검사시절, 정치인 시절, 도지사 시절을 버텨냈습니다. 대부분 우리 국민들처럼, 가진 것이 별로 없는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남편, 집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착한 남자입니다. 본인이 스트롱맨이라고 하지요? 제 앞에서는 소프트맨입니다. 잔소리 하면 얌전히 말 듣는 중년의 아저씨입니다. 아들들한테 싫은 소리 해놓고 못내 미안해서 뒤돌아서서 마음 아파하는 그런 착한 아빠입니다.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서는 뭐든 다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그런 우리 시대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가장이 바로 저희 남편입니다.
언론이랑 정치권에서는 저희 남편이 ‘막말’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글쎄요. 저는 저희 남편이 말을 조금 직설적으로, 세게 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과연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막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쓴소리를 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눈치만 살피는 그런 사람들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니까, 국민들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정치인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닌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이 사회가 똑바로 굴러가지 않을까요?
우리 남편은 그 동안 많은 말을 했지만 그 중에 거짓말, 틀린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제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늘 머리속으로 지금 국민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신중한 사람입니다. 남편은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그 누구도 겁을 내서 하지 못하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기에 오늘의 홍준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저희 남편이 조금 투박하고 고집스럽다는 말씀들도 많이 하십니다. 특히 저희 남편, 정말 가꿀 줄을 모릅니다. 제가 좋은 옷 좀 사 입어라, 좀 젊게 입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해도 그것만은 절대 듣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은 남편한테 작정하고 쓴 소리를 좀 했더니 남편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어렸을 때 가난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좋은 거, 비싼 거, 화려한 거 입기 불편하다고요. 지금도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요.
그 이후로 저는 남편한테 더 이상 잔소리 안 합니다. 홍준표만의 방식, 홍준표만의 스타일이 있구나.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남편을 바꾸려고 하기 보단, 남편의 뜻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거칠어 보이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이 저희 남편입니다.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만 틀린 말, 허튼 소리 안하는, 강직한 사람입니다. 비록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저희 남편, 이렇게 속이 깊은 사람입니다.
이제 대선이 정말 얼마 안 남았는데요. 저는 이 기간이, 저희 남편의 진정성과 진실 됨을 국민 여러분 모두 알아봐주시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5월 9일,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지도자를 뽑습니다. 가족으로 따지면 한 명의 가장을 뽑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가장 홍준표, 남편 홍준표, 아버지 홍준표를 옆에서 지켜봐왔습니다. 저희 남편, 물론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고쳐야 할 부부분도 있습니다. 완벽하다고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홍준표는 정말 책임감 있는 사람입니다. 홍준표는 정말 진실된 사람입니다. 홍준표는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홍준표는 절대로 불의와 타협하거나 거짓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홍준표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저희 남편한테 기회를 주세요. 저 이순삼을 믿고 맡겨 주십시오. 저희 남편이 대통령 돼서 잘못하는 게 있으면 제가 옆에서 잔소리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내조하겠습니다.
저희 남편은 반드시 해낼 겁니다. 국민여러분의 듬직한 지도자, 따뜻한 지도자, 자랑스러운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