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런 현대상선 CB발행·공매도, 개미·외국인 모두 당했다

유상증자 신주 상장 전 CB 공시…이틀간 주가 33% 급락
개인투자자 물론 용선료 할인했던 용선주도 재산상 피해
CB 발행 전 일부 기관 대량 공매도…사전정보 사용 의혹도
  • 등록 2016-08-05 오후 3:08:57

    수정 2016-08-05 오후 3:12:56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현대상선(011200)이 채권단 출자전환을 포함한 대규모 유상증자 직후 대량 전환사채(CB)를 발행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잇단 물량 부담으로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유상증자에 참여한 개인 투자자나 용선료 일부를 주식으로 받은 용선주가 손해를 본 탓이다.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선 기관 투자가가 주가 하락을 염두에 둔 공매도 거래로 차익을 챙기면서 상대적 손실이 더 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채권단에 CB 발행…주가 하락 피해는 개미 몫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지난 2일 장 종료 후 채권 일부를 대환하려고 한국산업은행 등을 대상으로 2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튿날인 3일과 4일 주가는 각각 27.92%, 7% 이상 급락했다. 이는 CB 발행이 새로운 자금 조달이 아니라 이른바 빚을 갚기 위한 용도로 활용돼 물량에 대한 부담감만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B는 전환청구기간 동안 전환가액만큼 주식으로 전환해 처분할 수 있다.

현대상선은 불과 보름 전에 총 2억8000만주를 발행해 약 2조6684억원을 조달하는 일반공모방식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청약에서 실권주가 발생해 실제로는 약 1억5129만주(약 1조4418억원)를 발행했다. 유상증자에는 채권단 출자전환과 사채권자, 용선주 등의 물량도 포함됐다. 일반 개인투자자 참여 물량은 약 400억원으로 추정됐다.

청약 때만 해도 용선료 협상과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는 1만2000~1만3000원을 오갔다. 유상증자 주당 발행가액은 9350원에 불과해 증자에 참여하면 수익을 낼 가능성이 큰 투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신주 상장직전 CB 발행을 공시했고 주가는 급락했다. 신주 발행가를 크게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져 일부 주주는 큰 손실을 입게 된 상황이다.

신주 상장을 앞두고 대규모로 진행된 공매도도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CB 발행 공시 당일인 2일 현대상선 공매도 물량은 전날 3배 수준인 15만5655주로 집계됐다. 당일 전체 거래량의 3분의 1 이 넘는 수준이다. 주가 하락에 베팅한 거래가 급증하며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떠안은 셈이다.

손실을 본 것은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용선주도 마찬가지다. 용선료 조정분(할인액·5300억원)의 최소 40% 이상을 출자전환해 주식으로 받게 될 예정이었는데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용선주가 50%를 출자전환했다고 가정 시 금액은 2650억원인데 30% 주가가 떨어졌다면 800억원 가까운 손실을 본 셈이다. 다만 이들은 ‘권리공매도’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한 것으로 파악된다. 통상 증권사 등으로부터 주식을 빌리는 공매도와 달리 권리공매도는 증자에 따른 신주 상장 이틀 전부터 이들 주식을 활용할 수 있다. 주식 보유가 확실해 공매도 거래를 할 수 있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지난 3일과 4일 이틀간 외국인은 약 1364만주를 순매도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세부 거래 내역은 알 수 없지만 매도 물량이 많은 것을 볼 때 권리공매도 형식으로 판 주식이 포함됐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절차문제 없지만…대규모 물량 부담 상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가 재산상 피해를 본 개인 투자자는 현대상선과 채권단을 성토하고 있다. 유상증자 당시 투자설명서 CB 발행 관련 설명을 성실하게 하지 않아 피해를 야기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유상증자 투자설명서는 분량이 374쪽에 달하지만 CB 관련은 ‘대주주 감자 절차가 완료된 시점에 전환사채 2000억원을 발행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2~3줄만 들어갔다. 주식 전환 옵션이 있는 CB를 산업은행 등 국내 기관 대상으로만 발행함으로써 특혜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거래소는 CB 발행이 일명 ‘깜깜이 공시’라는 지적에 대해 절차상으로는 문제없다는 판단이다. CB 발행이야 수시공시 사항이어서 사전에 알릴 의무가 없고 투자설명서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허가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2일 이뤄진 공매도 역시 미공개 정보 사전 이용에 대한 의심이 있을지는 몰라도 현재로서는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시부 관계자는 “일반공모 유상증자 자체는 법률 검토를 끝난 상황에서 신고서가 수리됐고 이후 주가 흐름은 유통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며 “공매도 역시 사전에 정보를 취득한건지 단순 주가 하락을 예견한 투자인지는 알 수 없고 다만 문제가 있다면 시장감시위원회에서 조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상증자 신주 약 1억5129만주가 상장한 5일 주가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 하락폭이 예상보다 커지자 채권단이 “CB 물량을 매도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잠시 안정세를 나타내는 양상이다. 채권단은 3일 전환사채 관련 보고서에 이번 CB의 전환권 행사로 취득한 주식은 별도 결의가 없는 한 2021년 6월20일까지 처분을 제한키로 결의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미 언제든지 처분 가능한 주식 1억주 이상이 상장된 만큼 오버행(대량 대기매물) 우려가 상존한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는 3자배정과 달리 보호예수가 적용되지 않아 즉시 처분이 가능하다”며 “이미 주가가 많이 하락했기 때문에 손절매를 위한 추가 매물이 나올 수 있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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