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토크 - 알면 더 맛있는 막걸리의 역사와 미래

  • 등록 2011-10-06 오후 5:16:05

    수정 2011-10-06 오후 5:49:11

[이데일리TV 조은송 PD] 가을의 문턱, 벌써 열한 번째를 맞이하는 인사동 막걸리 축제. 막걸리의 알싸한 향기가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막걸리의 텁텁하고 달콤새콤한 맛은 파란 눈의 외국 손님들까지 사로잡는다. 축제에서 만난 한 외국인은 "전혀 새로운 느낌이에요. 부드럽고 풍부한 맛과 다양한 향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막걸리에 대한 첫 느낌을 말한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 나눠왔던 막걸리는 한동안 숙취가 심한 싸구려 술로 외면당해왔지만 최근 웰빙 열풍과 함께 젊은 세대뿐 아니라 세계적인 발효식품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막걸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술중 하나다. 찹쌀, 멥쌀 또는 보리나 밀가루 등을 찐 다음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켜 만든다. 필요에 따라 맑은 술인 청주나 과실 껍질을 이용해 약주를 빚거나 목적에 따라 탁주와 소주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1909년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직접 빚은 술을 규제하게 된다. 명분은 국민보건이었지만 사실은 세금 징수가 목적이었으며 이로 인해 250종류가 넘던 우리의 전통주 대부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1950년대 전쟁을 치르면서 쌀이 더욱 귀해지자 양조장들은 값을 내리는 대신 탁주에 물을 타서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막걸리로 불리게 된다. 그래서 막걸리는 예로부터 살림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의 술이었다. 배가 고팠던 시절의 농민들은 끼니 대신 막걸리를 마셨으며, 6,70년대 주머니가 가난한 대학생들의 술벗 역시 막걸리였다. 1970년대 중반 만성적인 식량부족 상태가 계속되면서 쌀 대신 밀가루로 막걸리를 빚어야 했다. 술의 품질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막걸리 대신 소주를 찾았다. 쌀로 빚은 전통적인 막걸리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막걸리의 도수는 6~7도. 소주나 와인에 비해 낮은 편이라서 몸에 부담도 덜하다. 막걸리 한 병에 들어있는 유산균은 700억~800억 개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요구르트에 비교하자면 약 100병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또한 막걸리는 장에서 염증이나 암을 일으키는 유해세균을 파괴하고 면역력을 강화해주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한국식품연구원 식품분석센터는 막걸리에 항암물질인 파네졸 성분이 맥주나 와인보다 최대 25배 많이 들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효능이 알려지면서 2008년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먼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지난해 일본에 수출된 막걸리는 약 1500만 달러로 전년대비 188%나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막걸리는 또 하나의 한류로 당당히 인정받게 되었다. 최근에는 스타 장근석이 막걸리 CF에 출연하면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에서 시작된 막걸리 열풍은 거꾸로 우리나라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농특산물과 결합하며 변화된 모습을 선보였다. 쌀로 만든 부드러운 맛과 향 그리고 다양한 재료와의 조합으로 막걸리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주류 시장을 노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막걸리의 종류는 700여 가지 남짓. 이중 90% 이상이 유통기간이 15일 미만인 생막걸리다. 주류 도매 유통업자의 대부분은 대형 제조사의 특정 제품만을 취급하고 있기에 우리가 소매점이나 식당에서 접할 수 있는 막걸리의 종류는 매우 제한적이다. 막걸리의 인기는 치솟고 있지만 영세 지역 소매업자들에게는 별로 피부로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막걸리 시장에 진출하면서 영세한 양조장들은 대량유통과 대량생산에 밀려나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있다. 막걸리의 인기가 뜨거워질수록 오히려 지역의 작은 양조장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는 셈이다.

추억의 막걸리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전주의 삼천동 막걸리 골목. 큼직한 막걸리 한 주전자가 1만 7천원. 테이블 위를 가득 메운 20가지 이상의 안주는 막걸리에 딸려 나오는 덤이다. 넉넉한 전라도 인심을 온 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다. 막걸리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먼 길 달려오는 손님들도 부지기수다. 전주막걸리는 사람을 네 번 취하게 만든다고 한다. 일단 막걸리의 흥에 취하고, 푸짐한 안주에 놀란 다음 그 맛과 가격에 또다시 매료되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한 주전자를 비울 때마다 달라지는 푸짐한 안주 인심은 빡빡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까지 포근하게 달래준다. 더욱 차별화된 막걸리를 선보이는 곳도 생겼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에서 막걸리와 다양한 퓨전 안주를 먹을 수 있는 막걸리바다. 이곳에서 서민의 술에서 고급 전통주로 탈바꿈한 막걸리는 다양한 맛과 색깔의 막걸리 칵테일로도 젊은 층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안주도 전통주점의 파전과 달리 치즈어리굴젓과 같이 한식에 퓨전스타일을 가미한 메뉴들이 대부분이다.

막걸리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잔을 부딪치는 모든 이들과 가식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유쾌한 술이다. 하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은 “먹걸리는 가장 싼 술이고 아래로 보이는 술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보배스러운 술이에요. 가장 대중적이고 우리와 함께 살아 온 술인 거죠. 그래서 더 소중해요. 지역의 막걸리들은 그곳에서 생산된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그곳의 농산물, 바람, 습기 그리고 누룩과 같은 현지의 공간성을 반영하고 있기에 모든 막걸리가 다르고 모두 소중한 거예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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