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리포트)갈대같은 관료의 심지

  • 등록 2007-03-22 오후 5:49:25

    수정 2007-03-22 오후 5:49:25

[이데일리 하수정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에 대해 `나라 꼴`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KBS가 오는 4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 적용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바로 다음 날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KBS 편을 들었던 게 찔렸던 지 KBS를 공공기관에 지정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번복한 것이지요. 해바라기 관료 얘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요, 경제부 하수정기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들어보겠습니다.

정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KBS는 공공기관일까요, 아닐까요?

KBS를 공공기관에 넣을지 말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KBS는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공공기관 적용대상에서 빼달라고 요구하며 특집 방송까지 방영했고, 60여명의 국회의원들은 KBS와 EBS를 법률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노무현 대통령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KBS가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이 언론의 자유· 독립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KBS가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이는 자사이기주의와 전파남용의 예"라며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의원 60여명을 통해 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래선 나라꼴이 문제"라고도 했습니다.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말이 떨어지자, 공공기관법의 주무부처장인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뜨끔했나봅니다. KBS를 공공기관법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장 장관은 다음 날 바로 기자들에게 "KBS의 요구는 지나치다"며 `KBS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게 맞다`는 식의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장 장관은 지난해 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서 "KBS를 공공기관 지정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지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 데 말이죠.

그가 기자들에게 털어놓기를, "지난해 국회에서는 KBS와 한국은행이 (공공기관 지정에서) 빠지더라도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시급했다. 그때 법을 통과시키지 못했으면 공공기관법은 올해 시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라더군요.

결국 지난해 입법과정에서는 국회 눈치를 보면서 `KBS를 공공기관에서 제외하겠다`고 얘기했다가, 올해 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노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마자 `제외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입장을 바꾼 셈입니다.

관료들의 `청와대 코드 맞추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이 "위력있는 매체"로 키우고 싶어하는 `국정브리핑`(http://www.korea.kr)을 보면 바로 나타나는데요.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지난 21일 국정브리핑에 `재계 원로 발언과 경제위기론`이라는 글을 기고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위기 발언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다"며 "회사가 당장 잘 나간다고 방심하지 말고,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는 최고경영자로서의 당연한 당부였다"고 이 회장 발언의 의미를 축소했습니다.

조 국장이 열흘 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건희 회장의 경제위기론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며 "지금은 우리의 성장 잠재력을 걱정해야할 시기며 하루 이틀에 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정부도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는 영 딴판입니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도 지난 20일 한 강연회에서 "최근 대중국 무역흑자가 줄어들고 일본에 대한 적자는 늘어나고 있다"며 재계 원로들이 우려했던 `샌드위치론`에 힘을 실었다가는, 하루 뒤 국정브리핑에서는 "경제 우려가 지나쳐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이면 도움이 안된다"고 비판조로 180도 바뀌었습니다.

하긴, 우리나라 최고 경제수장인 경제 부총리도 대통령 `코드맞추기`로 정책에 대한 소신을 뒤집는 판이지요.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이자제한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는데도 올들어 이자제한법 부활에 찬성한다는 입장으로 돌변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불법 사금융 피해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후에 말입니다.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한 민간 분양원가 공개는 어떤가요. 노 대통령이 분양원가 공개방침을 시사한 뒤에 권 부총리는 `기업을 위축시키고 땅 값의 원가도 알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압박에 밀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7개 항목의 기본형 건축비를 공개하는 `1.11`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끝까지 소신지킬 수 있는 공무원이 어디 있습니까? 청와대 눈치보랴, 국회 눈치보랴, 여론까지 신경써야 하는 마당에요. 고위공무원단 제도 만든 뒤에는 경쟁도 치열해져서 정말 살 맛 안납니다".

그렇습니다. 소신을 지킬 수 없는 관료들이 얼마나 고생이 많겠습니까. 노고가 대단하지요. 다는 아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연, 혈연을 맞추려 호적까지 바꾸는 게 출세하고픈 관료들의 속성이라지요. 퇴직 관료 한 분도 요즘 고위 관료들 무지 고생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요즘 윗 코드 맞추기에 열심인 것으로 `소문난` 관료분들이 명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관가 후배들은 경제정책 핵심 포스트에 앉았는 여러분들이 과거에 했던 말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앞 길이 창창한 후배들 가슴에 망치질을 하고 계십니다. 또 국민들은 여러분들의 `자랑스런` 이름 석자를 오랫동안 떠올리게 될 것임을 깊이 새겨두시길 바랍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바이든, 아기를 '왕~'
  • 벤틀리의 귀환
  • 방부제 미모
  • '열애' 인정 후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