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서든데스"에서 얻은 작은 교훈들

  • 등록 2002-04-02 오후 6:56:39

    수정 2002-04-02 오후 6:56:39

[edaily 박호식기자] 증권거래소 25개 종목, 코스닥시장 2개 종목 등 27개종목의 퇴출이 확정됐습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 역사에 주요한 사건으로 기록될만 합니다. 이처럼 많은 종목이 한꺼번에 퇴출된 적이 없었으니까요. 기업들의 퇴출과정을 지켜본 증권부 박호식기자가 이런저런 뒷얘기들을 정리했습니다. 참으로 힘든 한달이었습니다. 퇴출된 기업이나 퇴출을 모면한 기업들의 속앓이도 심했고 증권거래소, 코스닥증권, 금감원 관계자, 심지어 출입기자들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언제 어떤 기업의 퇴출소식이 들려올 지 몰라 5분대기조(?)처럼 하루하루를 보내야했으니까요. 그러나 누구보다도 투자자들이 긴장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주식이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번일을 향후 투자의 교훈으로 삼자는 취지에서 한달동안 지켜본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봤습니다. 우선 기업이 부도가 나거나 퇴출이 결정된 뒤 대주주들의 지분매각이 문제시됐습니다. 메디슨은 지난 1월 부도전 이민화 회장 등이 지분을 매각했다고 시비가 있었습니다. 또 지난달 부도로 퇴출절차가 진행중인 삼한콘트롤스는 최대주주인 김찬욱 사장이 지난 2월 100만주(22.63%)를 장내처분해 비난을 받았습니다. 대주주가 행발불명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옵셔널벤처스 최대주주는 2월초를 전후해 지분을 대량 처분했습니다. 대주주가 지분을 처분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일부 지분을 처분할 수도 있고 회사를 인수해 경영을 하겠다는 상대방이 나타나면 회사를 팔 수도 있습니다. 메디슨측도 이민화 회장 등의 주식처분 비난에 대해 "회사에 투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었습니다. 그러나 대주주가 장내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지분을 대량 처분했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한번쯤 회사경영이 악화된 것이 아닌가 의심해봐야 합니다. 대주주지분 매각외에도 서든데스(강화된 규정) 칼날을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도 볼만했습니다. 아이즈비전과 선진금속 등은 자본잠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느닷없이 감자를 해 투자자들을 놀라게했습니다. 웰컴기술금융도 감자를 통해 퇴출을 모면하고 관리종목으로 갔습니다. 해외BW 신주인수권 행사나 전환사채의 주식전환으로 자본금을 늘리는 방법도 유행이 됐습니다. 아큐텍반도체가 신주인수권 행사로 자본잠식 규모를 50%미만으로 떨어뜨려 관리종목 편입을 모면했고 인테크도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자본잠식 규모를 줄였습니다. M플러스텍도 해외BW전환을 추진했으나 거절당해 관리종목에 편입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기업의 경우 당시 주가가 신주인수가격보다 크게 낮은 상황인데도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더구나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여서 "투자이익을 위해 인수한 외국인이 그런 멍청한 일을 했을까"하는 의문을 자아냈습니다. 그런일 가능했던 것은 "회사가 투자자에게 애걸복걸했던지 외국인은 역외펀드이며 실제 투자자는 검은머리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습니다. 생사기로에서 살아난 기업과 퇴출된 기업들의 기막힌 사연도 있습니다. 연합철강은 최대주주와 2대주주간의 경영권분쟁으로 소액주주지분 10%미달, 거래량미달로 퇴출이 거의 확정됐으나 2대주주가 지난해 12월 대량 자전거래하고 올들어 일부 지분을 매각해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주주간의 대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연합철강은 "주총에서도 지분매각 사실을 숨겼다"며 2대주주에 대해 배신감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철강과 어렵사리 피인수계약을 맺은 환영철강은 이런 노력도 헛되이 퇴출대상이 됐습니다. 미처 자본잠식을 해소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M&A소식에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이 안타깝게 됐습니다. M&A소식보다 자본잠식 사실을 먼저 시장에 알려줬으면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출이 결정된 메디슨의 사연은 더 기막힙니다. 지난 1월 부도가 난 뒤 가까스로 법정관리를 받아 생존의지를 불태웠으나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퇴출돼 두번 죽는꼴이 됐습니다. 의견거절 사유가 "부도가 난 뒤 법정관리 등 회생을 위해 직원들이 매달리다보니 해외법인이나 대리점의 감사자료를 준비하지 못했다"입니다. 라미화장품의 자본잠식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라미화장품이 자본잠식으로 관리종목 편입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음에도 주가는 오르고 급기야 자본잠식 조회공시가 요구되자 하한가로 떨어기도 했습니다. 강화된 외부감사로 인해 감사전 실적과 감사후 실적이 크게 달라지는 기업도 꽤 많았습니다. KDS는 당기손실이 1060억원에서 감사후 8006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외에도 3R등 많은 기업의 실적이 변동했습니다. 앞으로는 회사의 실적공시도 주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회계감사 강화로 감사를 잘못한 회계법인도 퇴출될 수 있으니 얼마나 꼼꼼히 감사를 하겠습니까.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일이지만 한가지만 더 추가하겠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같은날 호재와 악재를 동시에 공시했는데 호재후 악재공시로 주가가 급등락을 하기도 했습니다. 쌍용정보는 액면분할 결의를 공시한 뒤 작년 실적악화 공시를 냈습니다. 악재를 희석시키기 위해 액분을 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듭니다. 27개사의 퇴출이 확정됐지만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고제, 흥창, 테크원, 한빛전자통신 등이 감사보고서 미제출 등으로 투자유의돼 있고 상시퇴출 강화, 회계감사 강화 등으로 언제 어떤 기업이 퇴출될 지 모릅니다. 물론 쌍용건설 등 퇴출우려기업에 투자했다가 생존으로 결정되면서 주가가 폭등, 짜릿한 손맛을 느낀 투자자도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 금감원 등이 시장 투명성 제고를 위해 불공정행위 감시와 벌칙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공시를 더욱 강화해 느닷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고 투자자들도 "높은 수익에는 높은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다시한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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