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불만을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뭔지가 더 궁금할 것 같습니다. 논의가 흘러온 과정도 좀 복잡하구요.
출총제는 재벌(기업집단)들이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즉 경제력 집중현상을 막기 위해서 지난 1986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된 제도입니다.
당시에는 재벌 자산의 총액이 4000억원 이상일 경우 해당 재벌은 순자산의 40% 이상을 출자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중소기업들이 뭔가를 하려고 하면 곧 바로 재벌 기업들이 뛰어들어서 `싹쓸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출총제는 1994년에 출자한도가 25%로 줄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보기에는 40%가 많다고 본 것이죠. 그러다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2월에는 기업구조조정을 촉진시키겠다는 이유로 제도를 폐지합니다.
그랬던 출총제는 1999년 다시 살아납니다. 정부가 보기엔 30대 그룹들의 내부 지분율이 크게 높아졌다는 이유 때문이죠. 재벌들이 출총제 폐지 기간에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다사 확장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죠.
일단 출총제의 역사만 살펴봐도 왜 기업들이 불만을 갖게 됐는지 짐작이 갑니다. 정부가 원칙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측가능하지도 않구요. 기업들이 출자나 투자를 할 때는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등산이나 가볼까'하고 배낭을 메는 기분으로 하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대기업들은 정부가 언제는 수출 효자니 뭐니 칭찬하다가, 또 어떤 때는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불만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출총제가 그렇게 중요한 금과옥조였다면 처음부터 일관성을 가지고 유지하든 했어야지, 손바닥 뒤집듯 왔다갔다 하는 것은 출총제 자체의 정당성 논란을 떠나서 옳지 않다는 것이죠.
재계는 또 출총제가 일본이 한때 실시했던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례가 없는 제도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기업의 크기만으로 출자를 막는 것은 발상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입니다.
이런데도 정부는 `재벌 = 경제력 집중 = 출자제한` 이라는 등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대기업들의 말만 다 맞는 건 아닙니다. 재계도 여전히 3%의 지분으로 50%의 계열사 지분을 통해 회사 전체를 장악하는 기업이 실존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회사가 오너의 전횡에 의해 휘둘리고, 급기야는 생사의 갈림길에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리 '대기업은 믿을 수 없어`라는 식으로 단정을 짓고 사전 규제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 가는 사람을 모두 '예비 범죄자'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과거처럼 기업들이 전횡을 일삼기 힘든 달라진 기업 환경도 감안해야 합니다. 요즘은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혹시라도 기업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사후적으로 견제하는 시스템이 매우 잘 발달돼 있습니다. 시장의 자율규제에 맡길 수 있는 부분은 과감히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출총제 폐지의 적절성 여부는 그렇다 치고 제도 개선과정에서 정부가 기업들한테 신뢰를 잃었다는 점입니다. 약속을 안지켰다는 것이죠.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도 드러났듯이 정부 정책은 무엇보다 신뢰성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기업을 믿어줘야, 기업도 정부를 믿고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