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힘든 건 견딜 수 있겠는데, 국민건강권을 포기했다고 욕 먹는 건 참 힘듭니다. 며칠 밤 새서 일을 해도 끝도 안보이고..."
요즘 농림수산식품부 공무원들의 얼굴에서는 생기를 찾기 어렵습니다. 지난 4월11일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수입 협상이 밤샘 마라톤 협상끝에 일주일만에 타결됐지만, 이후 한달간 농식품부 직원들은 퇴근도 제대로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말도 휴일도 없이 일하다 보니 거의 `탈진` 상태랍니다.
협상에 관여했던 한 고위 공무원은 링거 주사를 맞기도 하고 약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습니다. 이달 초에 이어 지난주까지 이어진 국회 `쇠고기 청문회`를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하루 온종일 긴장한 나머지 결국 병원신세를 진 관료도 있습니다.
`검역주권을 내줬다`, `국민건강권을 다 넘겼다`는 국민들의 비판에 "요즘 이유없이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며 건강을 걱정하는 50대 공무원도 있습니다. `한달이 일년 같았다`는 말도 합니다. 쇠고기 협상과 비슷한 때에 터진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까지 겹쳐 농식품부는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전쟁 치르듯 보내고 있습니다.
한 농식품부 직원은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면 큰 산 하나를 넘은 것이니, 농식품부로서 우리는 한우 농가 보호대책 등을 열심히 마련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서 온 국민이 정부를 성토하며 재협상을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들딸 같은 어린 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오는 모습에 공무원들도 크게 당혹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매국노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까 개인적으로 겪는 마음고생이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앞으로도 당분간 수그러들 것 같지 않으니, `탈진상태`에 빠진 농식품부 직원들의 힘든 하루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한달 간 힘든 나날을 보낸 농식품부 공무원들이 꼭 많은 것을 잃은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국민들의 식을 줄 모르는 반대여론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반성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식품 위생과 건강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을 정부가 미리 계산하지 못한 오류도 솔직히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농식품부 직원은 "공무원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젊은 네티즌들보다 한발 앞서 생각하고 문제를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놨습니다.
`국민과의 소통 부족`은 정부가 뼈에 새겨둘 만한 중요한 대목입니다. 최근 공기업 구조조정이나 거시경제 운용 등 정부의 정책을 보면 국민과의 `소통`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려는 경향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 이번 쇠고기 파동 이후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고개를 숙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억울하다`고 항변하거나 `믿어달라`고 말하기 전에, 왜 국민들의 신뢰를 잃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답이 나옵니다. 쇠고기 파동으로 잃은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정부는 결국 거센 반대여론에 밀려 지난달 `애써` 타결했던 협의 내용의 장관고시를 연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0조 및 세계무역기구(WTO) 동식물검역협정(SPS 협정)에 따른 권리를 인정하고, 미국 국내 소비용 쇠고기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기준과 한국 수출용 기준을 통일한다는 내용의 미국과 추가협의 내용을 오늘(20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완책으로 분노하고 실망했던 국민들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한번 잃은 신뢰는 다시 회복하는데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