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 정몽구 현대차, 구본무 LG, 최태원 SK회장등 4대 그룹 총수, 강신호 전경련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만났다. 1년7개월만이다.
건강을 물어보는 등 분위기는 포근했고, 예민한 얘기는 비껴갔다.
훈훈한 분위기…대통령 "시장경제원리 어긋난 정책 안하겠다"
노 대통령은 총수들과의 만남이어서 그런지 거친 말은 자제하는 대신, 재계총수들이 기대하는 반가운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노 대통령은 수출 3천억 달성, 경제5% 성장을 이끌어 준 기업이 고맙다고 했다. 국내 기업들이 우려하는 환율 문제에 대해서는 환율절상 압력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대중소기업 상생회의에 노 대통령은 특히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는 정책을 하지않겠다"고 말했다. 또 "기업경영환경의 어려움을 없애도록 최대한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도 말해 4대 총수와 기업인들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딱 손에 쥐어준 선물은 없었다
재계가 반발해온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해서도 노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의 양해를 구했을 뿐이다. "현재 우리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 정부가 많은 토론 끝에 내린 결론으로서 적절한 수준의 균형점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양보는 없다는 것이어서, 재계 총수들로선 `고맙다`는 말 밖에 남길 게 없었다.
윤 경제수석은 "재계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서 노 대통령이 코멘트했다"며 "부처간의 많은 토론 끝에 나온 결론으로, 지금 정도가 균형점을 찾아간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당초 재계의 요구는 제도자체의 폐지였다.
이외에 재계는 기업규제 완화를 기대했는데, 이것도 거의 소득이 없는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윤 경제수석은 "추가적인 기업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일체 얘기하지 않았다'며 "이미 재경부가 대폭적인 기업규제 완화를 내놓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투자확대·일자리 확대 요청 강하게 받아
대신 4대 총수들은 노대통령으로부터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강하게 요청받았다. "위축된 투자심리를 풀고 투자에 적극 나서주기 바란다"는 노대통령의 발언이다. 4대 그룹은 올해보다 5.3% 늘린 47조9천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5.3%면 역시 높은 증가율이라 하긴 어렵다. 어느 때보다도 투자여력이 좋은 상태인데, 아직도 `몸사리기`라고 할수 있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IOC 위원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협조를 약속했다. 정몽구 현대차회장은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에 강한 재도전의지를 보였다.
노대통령, 전날 발언으로 분위기 다운시키기도
노대통령과 재계 총수의 발언은 훈훈해 보였지만, 사실 전날까지만해도 이런 분위기를 예상치 못했다. 원래 노대통령과 재계 총수들과의 별도 회동은 청와대 참모들의 건의를 노 대통령이 수용해서 이뤄진 자리다. 기업인들의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는 차원이었다. 그래서 재계는 좀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전날 노 대통령은 부산에 가서는 재계에 불편한 얘기를 쏟아냈다. "서로 특권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손잡고 법 적용을 피하고 법위애 행세하고 공정한 경쟁을 무력화하는 반칙의 시대, 특혜의 시대를 청산하자"며 "정부에서는 검찰이 센 편이고, 정부바깥에서 제일 센 것이 재계고 그다음이 언론"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훈훈한 회동을 기대했던 재계로서는 `싸~아`한 발언이었다.
`기업과 함께 간다`는 노대통령 인식 확인한 건 성과
재계총수들의 기대도 실상은 크지 않았으리라는 관측이다. 이렇게 한두번 이벤트성 만남으로 풀릴 관계가 아닌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에게는 최근에 연일 쏟아낸 거친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난 정책을 하지 않겠다"는 참 오랜만에 듣기좋은 얘기를 내놓았다.
확인된 중요한 것 한가지는, 노 대통령이 기업에 대해서는 많이 누그러졌고, 기업과 함께 가려한다는 느낌이었다. 비록 빈손이지만 그 정도로도 족하다는 게 재계의 속심정일 것 같다. 발언을 또 뒤집지만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