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걸어 온 브로커 A씨는 “개인회생 관련 수임료 150만원은 빌려서 낼 수 있기 때문에 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씨를 안심시켰다. 또 개인회생 관련 서류 등은 전문 변호사가 직접 작성해 주니 걱정할 것 없다고 꼬드겼다.
이씨는 브로커가 지정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수임료를 내고 회생절차를 시작했지만 연 40%에 육박하는 고액의 이자까지 더해진 탓에 점점 돈을 갚기 어려워졌다. 연체가 시작되자 브로커 A씨는 “회생절차를 중단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결국 이씨는 개인회생을 포기했고 이미 납부한 수임료 80만원도 되돌려 받지 못했다. 이씨는 나중에야 자신의 개인회생 관련 서류를 변호사가 아닌 변호사 명의를 도용한 브로커들이 작성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최성환)는 변호사 자격 없이 개인회생 사건 등을 처리한 법조 브로커 181명, 명의를 빌려준 변호사·법무사 41명, 광고업자 2명 등 관련자 222명을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이중 57명은 구속 상태서 재판에 넘겨졌다.
기소된 168명의 브로커들은 이 같은 수법으로 3만 4893건의 개인회생 사건을 처리하고 무려 546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변호사 명의를 임대해 955건의 법원 경매사건을 처리한 신종 법조브로커 13명도 함께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법조 브로커들이 활개 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의식 없는 변호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법조 브로커들이 개인회생 비리를 저지른다는 점을 알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 변호사 명의를 빌려줬다.
33명의 변호사들은 명의를 빌려주는 일명 ‘자리세’로 매달 100만~300만원을 받았고 사건 당 20만원 안팎의 ‘관리비’를 추가로 챙겼다. 2년간 자릿세와 관리비로 2억 7000만원을 번 변호사도 있었다. 이중 4명은 법원·검찰 출신이었고 변호사시험 출신도 1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변호사들은 브로커의 요구에 따라 의뢰인을 직접 만나기도 하는 등 얼굴마담 역할까지 했다”며 “사무실 임대료도 낼 여력이 없어 브로커가 마련한 방에 얹혀 지내는 변호사도 상당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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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기소된 대부업자 안모(53)씨는 개인회생 수임료대출 전문 대부업체를 새로 만들면서 자신이 직접 개인회생팀을 꾸렸다. 친척관계인 변호사의 명의를 빌린 안씨는 업계에서 이름난 브로커 서모(38)씨와 김모(35)씨를 섭외했고 이들은 45명의 수하 브로커들과 함께 개인회생 사건을 처리해 122억원의 불법 수임료를 올렸다.
검찰 관계자는 “브로커들은 개인회생 사건 의뢰인들이 안씨가 운영하는 대부업체에서 수임료를 빌리도록 유도했다”며 “이를 통해 안씨는 34.9%에 달하는 고율의 이자 수익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모(37)씨는 자신이 광고업체를 만들어 개인회생 의뢰인들을 모집한 후 연락처 등 개인 정보를 자신과 동업하는 개인회생 브로커 김모(35)씨에게 돈을 받고 넘겼다. 김씨는 이씨가 준 명단을 토대로 영업해 약 6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김씨는 이씨에게 정보료 외에 매월 2500만원의 수익금도 지불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성환 부장검사는 “브로커들은 전문적인 법적 지식을 갖추지 못해 부실한 사건처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검찰은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악용해 개인적 이익을 챙기는 브로커 및 명의를 대여한 변호사 등을 지속적으로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