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2003년 1월 뉴욕의 겨울풍경

  • 등록 2003-01-29 오후 4:47:57

    수정 2003-01-29 오후 4:47:57

[edaily 정명수기자] 미국 제1의 도시 뉴욕은 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영하 17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이 엄습했습니다. 9.11테러, 자본주의의 심장, 급락하는 주가, 이라크 전쟁.. `빅 애플`로 불리는 뉴욕은 영욕의 현장입니다. 경제부 정명수 기자가 얼어붙은 뉴욕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2003년 1월 뉴욕이라는 공간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시죠. 우리에게 미국은 뭘까요. 미국 경제는 뭘까요. 미국 경제의 심장, 뉴욕은 또 뭘까요. 우리는 뉴욕 증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받습니다. 그러나 정작 뉴욕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죠. 그 속에 있는 건물들, 사람들, 공원, 박물관 등등.. 뉴욕은 이 모든 것이죠. 타임스퀘어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번화한 거리입니다. 추운 날씨에도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큰 전광판이 있습니다. 주식 시세를 보여주죠. 뉴스도 나옵니다. 타임스퀘어 한 구석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떤 뉴스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노무현 당선자는 북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주가에 영향을 주는 뉴스 중 하나로 노 당선자의 인터뷰가 전광판을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걸로 끝. 타임스퀘어에서 북한 핵 문제는 이렇게 한줄로 정리됐습니다. 케이블TV 제가 묵었던 곳에는 채널이 800개가 넘는 케이블 TV가 있었습니다. CNN, MSNBC, FOX등 채널을 돌릴때마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바그다드, 터키, 쿠웨이트, 사우디를 인공위성으로 연결, 그곳에서는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시시각각 보고하고 있는 것이죠. 백악관 주변의 시각, 의회 지도자, 군사 전문가도 끊임없이 등장하구요. 심지어 이라크 침공 루트를 설명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TV들은 이미 전쟁을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아니, 전쟁을 하라고 조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9.11테러가 후세인 소행이라고 믿는 미국인들도 있답니다. 언론의 위력이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아침 일찍 레오나르도 다빈치 특별전을 보러 갔습니다.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드로잉을 모아서 전시회를 연 것이죠. 이 전시회는 모건스탠리의 후원으로 열렸습니다. 증시 상황이 나빠지면 감원의 칼날을 뽑아드는걸 주저하지 않는 투자은행이 그림 전시회를 후원하다니...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또 하나. 전시된 그림을 설명해주는 오디오 가이드가 있습니다. 5달러를 내면 녹음기 같은 것을 줍니다. 그림에 붙어 있는 번호를 누르면 설명이 나옵니다. 재밌는 것은 오디오 가이드 후원사였습니다. 9.11 테러 직후 뉴욕 시장에 당선된 마이클 블룸버그, 그가 운영하는 경제 통신사 `블룸버그`였습니다. 투자 은행은 전시회를 후원하고, 투자 뉴스를 공급하는 통신사는 오이오 가이드를 후원하고... 버스 미술관을 나와서 버스를 탔습니다. 숙소가 있는 롱아일랜드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죠. 뉴욕의 버스에는 토큰이 없습니다. 우리의 교통카드 비슷한 메트로 카드가 있죠. 지하철과 버스를 동시에 탈 수 있습니다. 메트로 카드가 없으면 반드시 동전을 내야합니다. 버스 요금통이 지폐를 인식하지 못하거든요. 1달러50센트하는 버스 요금이 없었습니다. 지폐뿐이었습니다. 당황했죠. 우락부락하게 생긴 흑인 운전기사가 뭐라고 야단입니다. 여행 가이드책에 이런 경우, 승객들에게 동전 교환을 부탁하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Can you exchange this bill to coins...?" 되는 영어인지 안되는 영어인지 무작정 옆자리 승객에게 부탁했습니다. 한참을 가방을 뒤져서 동전을 찾더군요. 근데 없다는 거에요. 그 옆에 여자 승객에서 부탁했죠. 역시 동전이 없데요. 그런데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짓더군요. 결국 앞자리의 흑인한테서 동전을 바꿨습니다. 버스 승객들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동전을 바꿔달라는 제 요청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줬습니다. 이런 미국인들이, 이런 뉴요커들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고, 이라크와 전쟁을 못해 안달이라는 것이 믿겨지십니까. 기차 저녁 8시. 팬실베니아 스테이션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뉴욕 맨하탄은 집값이 워낙 비싸 대부분 기차로 한두시간 거리의 교외에 집이 있습니다. 우리로 치면 분당이나 수원 쯤에서 통근하는 거죠. 기차는 승객들로 꽉찼습니다. 좌석이 없어 서서 가는 승객도 많습니다. 햄버거로 간단하게 저녁을 때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펼쳐든 지역 신문을 유심히 봤습니다. 헤드라인이 뭘까요. 실업률 기사였습니다. "올해도 실직은 계속된다. 노동시장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출퇴근을 하니까요. 보통의 뉴요커들은 주중에 딴 짓을 거의 못한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와야 8시까지 출근이 가능하고, 퇴근하고는 곧바로 집으로 가야 내일 아침 또 출근을 하죠. 직장을 잃지 않으려면 어쩌겠습니다. 집-직장-집-직장.. 다람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유태인과 한국인 록펠러 센터 뒤편으로 가면 서울 종로와 같은 금방 거리가 나옵니다. 대부분 도매상입니다. `LK 메가 골드`라는 금방을 경영하는 한국인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에서 금장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진입장벽이 높고, 인맥이 있어야 하니까요. 미국의 귀금속 시장은 유태인이 꽉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까만 외투에 높은 모자, 턱수염을 길게 기른 유태인, 아니면 빵떡 모자를 쓴.. 이런 유태인들이 좌지우지하는 뉴욕의 금시장에 한국인들이 얼마나 진출해 있을까요. 놀랍게도 금 거래의 모든 단계에 한국인들이 있었습니다. 금을 세공하는 공장, 그 공장에서 물건을 받아서 도매로 넘기는 도매상, 그 도매상과 연결돼 있는 소매상, 심지어 금세공 장비를 파는 가계까지. 다이아몬드 거래에도 한국인들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LK 메가 골드` 사장님은 10년전 무작정 미국으로 온 불법 체류자였다고 합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꿈을 향해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근 미국에 사는 한국 교민들은 걱정이 많다고 합니다. 촛불 시위를 보도하는 미국 현지 언론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거죠. 그래도 유태인을 능가하는 끈끈한 삶의 의지를 누가 꺾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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