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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지난 9일 정상회담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베트남 다낭으로 향했다. 정상회담 자체는 미·중 양국이 그 속내를 숨긴 채 갈등을 봉합하는 모양새로 무난히 마쳤지만 세계 최대 지역 협력체에서는 실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본격적인 외교전이 펼쳐지리란 전망이 나온다.
10~11일 일정의 올해 APEC 정상회의에는 두 정상을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 아베 신조(安部晋三)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총 21개국 정상이 참가해 연설과 함께 다양한 회담을 펼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미·중) 두 정상이 이제부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워싱턴 전략센터&국제연구소의 중국 전문가 보니 글래이저는 “(정상회담 땐)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양국의 갈등이 불거지는 수위를 조절했으나 APEC 땐 트럼프가 연설 속에 중국을 공격하는 치명적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양자 정상회담 땐 양측 모두 두 정상 간 유대 강화에 우선순위를 맞췄으나 다자 간 외교 무대인 APEC에선 본심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유롭게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대해 소개할 계획이다. 인도, 일본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외교 전략이다. 미국은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양자 정상회담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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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통합’이란 APEC 정상회의 주제도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공정 무역’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공정 무역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일본이 바라는 경제 통합, 자유 무역의 개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시 주석은 국제 자유무역의 새로운 중심이 돼 사실상 고립을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려 할 가능성이 크다. 또 참가국에 중국의 광범위한 무역·운송 연결 계획 ‘일대일로’의 참여를 독려할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의 공백을 이용해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창설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고 있다. 천샤오동(陳曉東)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최근 시 주석의 목표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국제 관계를 만들고 인류를 위해 미래를 공유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정상회담 때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대미 무역적자에 대한 강경 발언도 꺼냈지만 중국을 직접 비판하는 대신 ‘불공정한 무역 관계’를 맺은 과거 미 정부로 화살을 돌렸다. 국빈 이상의 ‘황제 의전’을 펼친 시 주석을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며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 면면을 따져보면 미국 측으로선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2500억달러(약 280조원) 규모의 경제협력도 맺었다. 외교 면에서도 트럼프가 시 주석에게 대북 제재 노력에 감사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시 주석도 “미·중 양국 간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그럴수록 더 많이 대화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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