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더스토리’(INDUSTORY)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
인류 역사와 함께한 금은 지금도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황금시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황금시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5개의 시대(금·은·청동·영웅·철) 중 가장 앞선 시대이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다스리던 ‘황금시대’는 이후 등장하는 어떤 시대보다 풍요로웠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시금석’도 금에서 유래됐다. 시금석은 고대 금 세공사들이 금의 순도를 측정하기 위해 늘 지니고 다녔던 검은 돌판(현무암)을 뜻한다. 그들은 순도를 측정할 금붙이와 자신이 지닌 표준 금 시료를 시금석에 긁어 묻어나온 색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순도를 측정했다. 결국 금의 가치를 가늠하는 도구에서 판단의 기준이 되는 기회나 사물을 뜻하는 일상용어로 의미가 확장된 셈이다.
임규태 박사는 “어원도 모른 채 황금시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이 황금을 최고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것”이라면서 “시금석의 어원에서 보듯 금은 인간의 말과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온 금속”이라고 강조했다.
|
화폐의 아버지 ‘리디아의 사자’
리디아의 주조 기술을 받아들인 로마는 금화와 함께 은화도 생산해 유통했지만, 금화가 화폐로 사용되는 일은 드물었다. 당시 금의 생산량이 은보다 적기도 했지만 금의 높은 가치를 눈 여겨 본 귀족과 부호들이 금화를 부의 축재 수단으로 금고에 보관했기 때문이다.
금이 본격적으로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즉위하고 나서다. 로마에서 500년간 사용되던 데나리우스 은화가 네로 황제 시절부터 은 함량을 속이면서 그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즉위 직전 데나리우스 은화의 은 함량은 5% 밖에 되지 않았고, 당시 로마는 5현제 이후 군인 황제 시대를 거치며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사회 개혁과 통합을 위해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가치가 땅에 떨어진 데나리우스를 대신해 솔리두스 금화를 도입하는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 로마가 동서로 분열하고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솔리두스 효과는 사라진다. 중세 암흑시대에 물욕을 죄악시하는 기독교 신본주의가 중심이 되면서 금화 유통이 자취를 감춘다.
|
패권을 거머쥔 영국, ‘영란은행’을 세우다
화폐가 다시금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대항해 시대 때이다. 해상 패권을 장악한 스페인이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지역에서 포토시 은광을 발견하며 질 좋은 은화가 대량으로 주조된 것이다. 네덜란드 역시 일본 이와미 은광을 독점해 은화를 생산하면서 무역 분야에서 스페인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대항해 시대가 ‘은의 시대’라고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스페인과 네덜란드 양강이 쥐던 해상 무역의 헤게모니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후발주자 영국이 해상 패권을 두고 스페인과 대규모 해전을 벌인 것. 영국은 같은 반(反) 가톨릭 국가였던 네덜란드와 손을 잡았고 가톨릭의 수호자였던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연합했다. 결국 이 전쟁은 영국-네덜란드 동맹의 승리로 끝났고, 승리에 기여한 사략 해적(정부 공인 해적)들은 합법적으로 무역 권한을 부여받고 차례로 동인도 회사를 세운다.
하지만 영국 동인도 회사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 관련 무역은 영국 선박으로만 할 수 있다는 항해조례를 발표한다. 이에 반발한 네덜란드는 영국과 전쟁을 벌인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네덜란드를 제치고 해상 패권국으로 발돋움 한다.
하지만 영국 내부에서는 공화정과 왕정이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왕들이 처형당하거나 쫓겨나는 혼란이 반복되고 있었다. 1688년 공화주의를 주장한 영국 공화파는 네덜란드의 오렌지공 윌리엄과 손잡고 제임스 2세를 추방하는 명예혁명을 성공시키면서 입헌군주국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
연금술사가 만든 ‘금 보관증’
영란은행의 최우선 과제는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은의 영향력을 줄이는 일이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생산하는 은화의 가치를 줄여야 영국이 진정한 패자로 거듭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은을 대신해 금을 화폐로 사용하고 싶어도 금의 절대적인 유통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영란은행은 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금 세공업자들이 사용하던 금 보관증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금 보관증 제도란 금 소유자가 금을 은행에 맡기면 보관증을 발행해 주는 시스템이다. 금 보관증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 금을 은행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교역에서 무거운 금을 주고받기 보다는 금 보관증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영란은행은 금 보관증 제도에 레버리지 효과를 더했다. 고객 한 명이 금 한 덩이를 보관하면 은행은 금 보관증 열 장을 발행했다. 만약 고객 열 명이 금 열 덩이를 맡기면 한 덩이만 저장하고 나머지 아홉 덩이는 다시 빌려줄 수 있었다. 결국 은행에 보관된 금은 한 덩이 뿐이지만 시중에는 금 보관증 열 장과 아홉 덩이의 금이 유통되는 셈이다. 임 박사는 금 한 덩이가 10배 이상의 가치로 불어나는 이 상황을 가리켜 ‘10%의 마법’이라고 지칭했다.
|
임 박사는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과학자들은 사실 연금술사였고, 뉴턴 역시 수많은 연금술사 중 한 명이었다”라면서 “그는 진짜 금을 만들어 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금 보관증과 레버리지 효과로 한 덩이의 금을 10배 이상 불리는 연금술을 구현했다”고 했다.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