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둔 27일, 충북에 거주하고 있는 김모(72)씨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설 연휴에 내려올 자식과 손주를 위해 햇 고춧가루와 담근 된장, 손녀딸 설빔 등 이것저것 준비해뒀다던 그였다. 김씨는 “뉴스에서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하고, 자식들은 애들 걱정하는데 내려오라고 강요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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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모이는 왁자지껄한 명절 풍경은 옛말이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오는 설 연휴에도 지난해에 이어 ‘언택트(비대면) 설’이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자녀들과 따로 살고 있는 노인들은 올해로 3년째 가족간 ‘생이별’ 속 쓸쓸한 설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충남 아산에 머물고 있는 김모(68)씨는 “괜히 식구들 모였다가 자식 발목 잡을 일 생기면 안 되지 않느냐”며 “조용한 명절을 보내는 게 답이지만, 바쁜 자식들 만날 기회가 명절뿐이니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경기 안산에서 홀로 사는 김모(72)씨 역시 “손주들 새뱃돈 주려고 은행가서 빳빳한 새 돈을 뽑아놨는데 쓸 데가 없어졌다. 애들 재롱 본 지가 언젠지 가물가물하다”며 “이제 차례도 안 지내니, 연휴 동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 쉬었다.
작년 설 명절에 전남에 있는 본가를 찾았던 A씨(28)씨도 이번 설 연휴에는 ‘집콕’할 예정이다. A씨는 “작년과 다르게 최근 주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데다 이번 확산세가 무섭게 번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아쉽지만, 부모님께는 선물만 보내드렸고, 화상전화로 인사 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명절 분위기 옛말…전문가 “지역사회 역할 중요”
방역당국도 귀성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26일 “이번 설에는 가능하면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며 “특히 본인과 부모님 중 어느 한 쪽이라도 3차 접종을 마치지 못한 경우에는 만남을 미뤄달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명절에도 홀로 지낼 노인들이 우울감에 빠지거나 사회적 고립을 겪지 않도록 지역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명절 때마다 가족들하고 모이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려운 시기니 지역사회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며 “어르신들이 혼자 집에서 지내시는 것보다 지역 주민이 경로회관 등에 같이 모여서 명절에 보낼 수 있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공적 돌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자기기에 접근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지역사회와 지자체가 협력해 태블릿PC 등을 배치하고 자녀나 손자녀들과 비대면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각 지역사회에서 독거 노인가구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어르신들을 사회로 이끌어낼 수 있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