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보면 이같은 해프닝은 결국 이번 금통위의 금리인상이 그만큼 일반적인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격적인 조치였다는 점을 반영한다. 물론 100% 시장의 컨센서스란 있을 수 없겠지만 이번달에도 사전에 드러난 시장의 대체적인 반응은 금리동결쪽에 훨씬 무게가 실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며칠전 이데일리가 시장전문가 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응답조사결과, 10명이 동결을 예상했고 다른 기관의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온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실 이번 금통위는 시작전부터 이전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오전 9시 직전 회의장에 들어서는 김중수 한은총재와 금통위원들에겐 어딘지 모를 '비장감'이 묻어 있었다.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기 직전 결의를 다지기 위한 긴장감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금리동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경로를 이탈하는데 대한 부담감이라고나 할까. 물리학의 '관성의 법칙'처럼 한번 일정한 방향이 익숙해지면 기존의 방향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의 법칙'이 한은 금통위에도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국내외 경기 상황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경로를 틀어버린다는 것은 분명 큰 부담이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이번 금리인상은 이미 사전에 충분히 예고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김총재 자신이 취임 직후인 지난 4월 "(금리인상문제에 대해) 대외경제상황을 보면서 결정한다"고 했고 5월엔 "지금부턴 금융위기 당시 상황과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했으며 6월엔 "물가안정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금통위 의사결정의 집합체인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도 지난 5월엔 '당분간 금융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는 표현에서 '당분간'이란 단어가 삭제됐고 6월엔 '물가안정 기조 위에서 운용하겠다'는 표현이 처음으로 포함됐다. 김총재 자신이 금통위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인상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냐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색을 하며 답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일련의 맥락 때문일 듯 하다.
하지만 경제정책과 통화정책의 수장들이 던진 이같은 일련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이번 통화당국의 금리인상조치를 전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는 결국 정부나 통화당국이 그만큼 시장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윤장관의 경우 물가불안에 대한 우려의 메시지를 시장에 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높아지는 상황..대내외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등 금리정책의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 상반된 메시지를 며칠새 잇따라 내보내며 시장에 혼선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총재는 취임 직후 "성장이냐 물가냐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한은이 정부정책과 협력하지 않는 건 적절치 않다"는 등 친(親)정부적 색채를 뚜렷히 드러내며 통화당국의 독립성을 스스로 걷어찼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총재는 일단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앞으로 시장을 결코 놀라게 만들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정책의 신뢰성을 위해 사전에 예측가능한 시그널을 내보내 시장이 적절히 대비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다짐일 터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장참여자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동안의 불신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김총재의 발언과는 관계없이 시장에선 향후 정책방향에 대해 벌써부터 무성한 억측이 나온다.
결국 통화정책이 시장에 적절히 파급되기 위해선 전달메카니즘으로서 통화당국 수장에 대한 신뢰가 더 필요할 것 같다. 김총재의 발언에 앞으로 어떤 무게가 실릴지, 통화정책의 전달체계가 원활히 작동할지 여부는 향후 김총재 자신의 적극적인 실천의지에 달려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