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환의 홍보에 울고 웃고)기자실과 쌍끌이

  • 등록 2007-05-30 오후 5:00:15

    수정 2007-05-30 오후 5:00:15

[이데일리 문기환 칼럼니스트] 요사이 언론은 자신들과 관련된 기사로 연일 떠들썩하다. 정부에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제목만으로 보면, 언론의 취재지원을 선진국 시스템과 유사하게 만든다는 것으로 매우 좋은 방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거의 모든 언론들은 물론, 언제나 티격태격하는 정치인들 조차 모처럼 한 목소리로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8월부터 시행한다는 이번 방안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금까지 정부 부처별로 담당 기자를 배정하고 현장에서 매일매일 취재를 해온 언론사의 기자들을 앞으로는 일정한 장소로 모이게 한 후 그 곳에서 브리핑을 받게 하고 기사 송고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자연히 부처별 기자실이 없어지고 통합적 기능의 대형 프레스 룸이 생겨나는 소위 “기자실의 통폐합”이 논란의 핵심이다.

기업의 홍보맨 출신인 필자까지 굳이 찬반 논쟁에 관여할 생각은 없다. 다만, 기자실에 얽힌 추억과 한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의견을 대신하고자 한다.

매출이 수천억원 규모가 되고 CEO가 홍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예외 없이 조직내부에 홍보팀이 구성되어 있고, 본사 건물에는 기자실이란 공간이 있다. 이익을 중시하는 민간 기업에서 비용이 발생하는 별도의 공간을 유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 기업의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서다.

혹자는 홍보(PR)에 대한 정의를 “피(P)할 것은 피하고, 알(R)릴 것 만 알린다” 또는 “피가 나도록 열심히 알린다”라고도 한다. 이 대목에서 돌발 퀴즈 하나. 피(P)할 것이 많은 곳은 불필요하고, 알(R)릴 것이 많은 곳은 필요한 것은? 답은 ‘기자실’이다. 즉 PR을 적극적으로 하길 원하면 기자실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가 홍보 담당자 경력을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서울역 앞 대우그룹 본사 건물에도 기자실이라 부르던 별도 공간이 있었다. 아직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은 시절, 기자실의 필수 집기는 책상 몇 개와 그 위에 시외통화가 가능한 직통 전화기, 기사원고 작성에 쓸 원고지와 필기도구, 그리고 재떨이가 전부였다.

이 밖에 서비스 차원의 공동 편의 시설이 있었는데, 전날 밤의 숙취를 풀기 위해 잠시 쉴 수 있는 간이 소파, 간혹 있는 정부의 특별 담화 발표나 저녁 때 뉴스 시청을 위한 텔레비전 (중요한 스포츠 경기 방송 때도 이용한다), 간단한 음료수가 들어 있는 소형 냉장고 등 결코 호화스럽지 않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 후, 기자들의 전화 송고 수고를 덜어 준 팩시밀리라는 기계도 추가되었지만.

그 밖에 들은 얘기이긴 하지만 당시 일부 기업과 모 정부투자기관의 기자실에선 담요도 필수 장비로 구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요즘의 상황으로는 마치 전설처럼 흘러간 얘기에 불과하니 국방색 군용담요의 용도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렇게 기자실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기자들이 가까운 장소, 즉 바로 회사 건물 내에서 취재와 송고 업무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를 갖고 회사의 주요 홍보사안을 기자들에게 충실히 전달 할 수 있는 매우 편리한 공간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기자 입장에서 보면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한 곳에 모인 곳이기 때문에 때때로 치열한 경쟁의 장소이기도 하다.

다음은, 기자실이란 작은 공간 안에서 다른 기자들의 눈치를 피해가며 어렵사리 대특종을 달성한 어느 기자에 얽힌 에피소드이다.

때는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2월 말 어느 날 오후였다. 미리 전화를 걸어 (주)대우 기자실에 마침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A기자가 두툼한 가방을 어깨에 둘러 맨 채 회사를 찾아 왔다. 그러면서, 중요한 기사 작성 때문에 오후 내내 기자실에서 취재를 하겠다고 한다.

필자는 혹시 대우가 관련 된 종합상사 일이 아닌가 하여 기자실을 들러 슬쩍 물어보니, 자신이 별도로 출입하는 해양수산부 관련 일이라고 했다. (그때나 요즘이나 대부분의 기자들은 여러 곳의 출입처를 갖고 있으며, 보통 가장 이슈가 많은 출입처 기자실을 베이스 캠프 식으로 이용하되 사안이 발생하면 해당 출입처로 이동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그런데 A기자는 광화문에 있는 해양수산부 기자실에서 취재를 하지 않고 이 곳에서 한다고 한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며 다른 업무를 보고 있는데 A기자가 홍보팀 사무실로 들어 온다. 기자실에 다른 기자들이 와 있어서 그런다며 사무실 전화와 팩시밀리를 사용하겠다고 한다. 강력한 호기심이 발동한 필자는 다그쳐가며 도대체 무엇을 취재하고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해양수산부가 최근에 일본과 어업관련 협상을 마쳤는데,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를 자신이 누군가의 제보를 받고 취재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사실로 밝혀져 내일 아침 신문에 특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부탁하는 말은 종합상사나 (주)대우에 관련된 일도 아니므로 지금 기자실에 와 있는 기자들은 물론 다른 기자들에게도 절대 함구해 달라는 얘기였다.

기자실과 홍보팀을 수시로 오가며 취재와 송고를 마친 시간은 대략 저녁 7시 30분. 그제서야, 한 숨을 돌린 A기자는 협조에 감사하다며 취재 가방을 정리하고 나선다. 그 동안 필자도 나름대로 대특종의 탄생을 돕는다는 심정으로 다른 기자들이 눈치를 못 채도록 표정관리를 해가며 조마조마한 시간을 같이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 날 아침 그 일간지의 시내판에는 그물을 어선 두 척이 끌면서 조업하는 형태인 ‘쌍끌이’ 선단을 우리 협상팀 담당자가 일본 수역 내 어업 가능 선박 목록에서 누락한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수천억원의 어민 피해가 우려된다는 내용으로 된 “한일어업협상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라는 제목의 기사가 1면 톱으로 보도되었다. (필자 생각으로는 본시 고유 명사 이던 “쌍끌이” 라는 단어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보통 명사화 한 것이 바로 A기자의 ㈜대우 기자실 특종 보도 이후가 아닌가 한다.)

문기환 새턴PR컨설팅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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