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5월 말에 전세 계약을 마친 뒤 갑자기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같은 조건 아파트의 전셋값이 2억원 가까이 뛰었다”며 “집주인 입장에서는 싸게 전세 계약을 해줬다고 판단해 집수리를 안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해당 집을 5월 말 7억 8000만원에 계약했는데, 임대차 3법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8월 이후 매물 전셋값은 9억 5000만원을 넘은 상황이다. 약 1억 7000만원이 껑충 뛴 것이다.
|
이른바 세를 놓기 위해 집안을 새단장한 ‘올수리 집’이 사라지고 있다. 전세매물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세입자를 구하는 집주인이 집수리를 뒤로 미루는 경우가 늘고있다. “어차피 급한 건 세입자라 낡은 집도 계약이 수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심지어 입주가 이뤄진 뒤 집수리를 세입자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2년 계약 갱신·인상률 제한 등을 담은 임대차 3법에 대한 불만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식이다. 오히려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포기하게 하는 게 이득이라는 심리도 깔려있다.
“어차피 집수리 안해도 전세 잘 나간다”…전세난에 콧대 높아진 집주인
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집주인이 “세입자들을 위한 집수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임대차 3법으로 전세 수요가 커지고 그에 따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라며 “결국 세입자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집주인 우위’ 시장이 탄생했다”고 분석했다.
|
중개업계에 따르면 세입자들도 집을 보지 않고 전세 계약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동구 옥수동 리버젠 아파트의 경우 전세 매물이 나올 시 집을 보지 않고 즉각 계약금을 입금하겠다는 예약자까지 있을 정도다. 1500가구가 넘는 성동구 대장주 아파트지만 지난 1일 기준 전세 매물은 단 3개에 불과할 정도로 매물이 귀한 단지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은 집도 안보고 전세계약을 한다”며 “집수리 여부는 세입자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해당 공인중개업소는 지난달 말 인근 옥수극동아파트의 전세 계약도 세입자의 ‘집 점검’ 없이 성사시켰다.
다만 집 주인들이 정당한 세입자들의 집 수리 요구를 무시할 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신효의 오세정 변호사는 “판례에 따르면 누수 등 생활에 위해 크게 피해가 가는 수리를 해야하는 의무가 집주인에게 있다”며 “세부적으로 따져봐야겠지만 곰팡이, 도배, 장판 등 손상 범위에 따라서도 집주인의 수리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 같은 의무를 집주인이 무시할 시 세입자는 집주인을 상대로 소송도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