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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복동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별세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지난 28일 오후 10시 41분경 김 할머니가 암 투병으로 별세했다고 29일 밝혔다. 향년 93세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총 23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생존자 중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앞으로 자신과 같은 전쟁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피해 당사자로서 위안부 피해 사실 적극 증언
정의연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1925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세인 1940년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피해를 당했다. 김 할머니는 해방 이후 1947년 귀향했다.
김 할머니의 공로는 수상으로도 증명됐다. 김 할머니는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의회 용감한 여성상(2010년) △국경 없는 기자회·AFP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 선정(2015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2015년)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2017) △정의기억재단 여성인권상(2017년)을 받았다.
위안부 피해 회복위한 활동도…“일본 사죄 꼭 받아야”
피해사실을 고백한 이후 김 할머니는 피해자 인권 보호 활동에도 앞장섰다. 김 할머니는 201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3년 뒤인 2015년에는 전쟁과 무력 분쟁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 5000만원을 나비기금에 직접 기부했다.
특히 김 할머니는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김 할머니는 암 투병 중이던 지난해 9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외교부 앞에 나와 1인 시위를 펼쳤다. 당시 김 할머니는 “어떻게 일가친척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우리를 보러 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을 파냐”며 “전 세계에 돌아다녀도 우리 나라 같은 나라는 없다”고 토로했다.
한편 김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윤미향 정의연 대표에게 “위안부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달라. 재일 조선학교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도 끝까지 좀 해달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 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