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철강업계와 조선업계 간 올해 하반기 조선용 후판(선박에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을 두고 팽팽하게 벌여온 협상이 ‘소폭 인하’로 귀결됐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협상이 7개월 만에 마무리된 셈이다. 올해 들어 국내산보다 가격이 저렴한 외국산 후판 수입량이 늘어난 점이 협상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 포스코 경북 포항제철소 제 2고로에서 쇳물이 나오고 있다.(사진=포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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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일부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최근 올해 하반기 조선용 후판 가격을 상반기보다 인하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정확한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올해 상반기 후판 가격이 톤(t)당 100만원선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 후판 가격은 t당 90만원대 중반선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간혹 해를 넘겨 협상이 타결되는 일이 있긴 했지만 통상 2~3개월 안에 협상이 마무리됐던 것을 고려하면 협상이 길어졌다는 평가다. 그만큼 철강사와 조선사의 의견 차이가 컸다는 의미다. 철강업체는 후판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조선사에 공급하고 조선사 역시 후판이 선박 제조원가의 20%를 차지해 후판 가격 협상은 두 업계 모두에 민감한 사안이다.
앞서 지난해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 역시 6개월 가까운 협상 끝에 소폭 인하라는 절충안을 찾았고 올해 상반기에도 5월에서야 협상을 끝맺었다. 특히 올해 하반기엔 철광석 가격·산업용 전기 요금 등 후판 원료 가격 인상과 저가 수입 물량의 증가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두 업계가 합의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는 후판 원료 가격이 상승한 만큼 이를 후판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후판의 원재료인 중국 철광석 수입 가격은 지난 5월 말 올해 최저치(톤당 97.35달러)를 기록한 이후 오름세를 보이며 지난 26일엔 올해 최고치(톤당 141.45달러)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더해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된 점도 철강업계로선 부담이었다.
그러나 외국산 후판이 국내산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을 나타내면서 협상은 후판 가격을 인하하는 쪽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 값싼 중국산 후판에 엔저 현상으로 일본산 후판까지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외국산 후판은 국내산보다 20%가량 저렴한 80만원대 초반대 가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내에 수입되는 후판 물량도 늘어났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의 국내 후판 누적 수입량은 167만5000톤(t)으로 전년 수입량인 169만1000t에 근접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수입량은 지난해 규모를 넘어 2016년 216만1000t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업계는 조선업계의 후판 가격 인하 요구와 외국산 후판 비중을 늘리는 데 대해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포스코는 풍력·태양광 소재용 제품 판매를 올해 120만t에서 2030년 300만t으로 늘린다. 현대제철은 국내 조선용 후판 판매 비중을 현재 55% 수준에서 45% 미만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