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대 가전 풀옵션 약속, 나한테만 한 게 아니라면?[사사건건]

원고, 아파트 홍보관에서 '분양 시 1억 원 상당 가전제품 제공' 제의 받고 계약 결심
계약금 입금 후 가전제품 수분양자 전부에 제공한다는 사실 알게 되자 계약금 반환 청구 訴
원고 측, 시행사·신탁사에 방문판매법·표시광고법 위반 근거로 계약 무효 주장
法 "원고가 직접 방문...기망 행...
  • 등록 2023-06-20 오후 3:26:46

    수정 2023-06-20 오후 4:03:47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아파트 사전 청약 당시 분양 대행사에서 본인에게만 1억 원 상당의 주방 가전제품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수분양자가 이 같은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이 계약 무효를 주장할 수 있을까. 실제 한 아파트 분양 계약자가 이 같은 이유로 전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어든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 였을까.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뉴시스.
20일 법원에 따르면, 광주지방법원은 최근 원고 A씨가 광주의 한 아파트 시행사와 신탁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광주시 북구의 한 신축 아파트 분양 홍보 문자 메시지를 수신했다. 이 아파트에 호기심이 생긴 A씨는 해당 문자의 발신자인 김모 씨에게 전화를 걸어 5월 5일 이 아파트 주택 홍보관에 방문하기로 예약하고 실제 그날 자신의 남편과 함께 이 홍보관에 방문해 김 씨 등과 상담을 했다.

그 과정에서 A씨는 이 아파트 분양 시 1억 원 상당의 유상 옵션 품목(냉장고, 인덕션 등 주방 가전제품 등)을 특별히 무상 제공하겠다는 김 씨의 현장 제의를 받았다. 이에 A씨는 이 아파트를 분양 받기로 결심하고, 보증금 100만 원을 김 씨의 안내대로 이 아파트 시행사에서 자금 관리 업무 등을 위탁 받은 신탁 회사 B사 명의의 계좌로 송금했다. 이어 같은 달 8일 추첨을 통해 이 아파트 수분양자로 선정되자 같은 달 21일까지 수차례에 걸쳐 계약금 등의 명목으로 총 1억2270만 원을 B사 명의 계좌로 송금했다.

이와 함께 A씨는 21일 이 아파트 중 한 채를 시행사 C사로부터 대금 12억2700만 원에 분양 받기로 하는 분양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달 24일 계약금 1억2270만 원 입금에 대한 입금 확인증도 받았다. 아울러 A씨는 같은 날 C사가 자신에게 약 1억 원 상당의 유상 옵션 품목을 무상으로 제공함을 확인한다는 취지의 확인서도 교부받았다.

하지만 이후 C사는 A씨 등 극히 일부에게만 1억 원 상당의 유상 옵션 품목을 제공하기로 한 기존 약속과 달리 수분양자 전부에게 해당 품목을 무상 공급한다는 내용으로 분양 계약 변경을 요청했다. 이에 A씨는 C사의 1차 중도금 납부 요청을 거부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같은 해 10월 4일 ‘C사의 계약 내용 변경 요청에 따라 자신이 이 아파트 전매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감소하게 된다며, 해당 분양 계약을 무효로 하고 자신에게 계약금 1억2270만 원을 돌려 달라’는 취지의 내용 증명을 C사에 보낸 뒤 곧바로 B사와 C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인 A씨 측은 법정에서 해당 분양 계약이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하 방문판매법)’과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먼저 원고 측의 주위적(청구 원인으로 먼저 주장하는 것) 주장인 방문판매법 위반 주장과 관련해선, 방문판매법 제2조에서 정한 ‘사업장 외의 장소에서 방문을 하는 방법으로 계약의 청약을 받거나 계약을 체결해 재화의 판매가 이뤄진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방문판매법이 적용되려면 같은 법 시행 규칙 제3조 제1호에서 규정한 사업장 외의 장소에서 권유 등의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해 함께 사업장으로 이동하는 경우여야 하는데, A씨가 직접 예약을 하고 스스로 방문 상담을 받았기 때문에 이 규정 역시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 사건을 맡은 광주지법 민사11단독 정영호 부장판사는 “이 사건 분양 계약이 방문판매법에서 정하는 방문판매 또는 전화권유판매의 방법으로 체결됐음을 전제로 한 원고의 주위적 주장은 나머지 쟁점에 관해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원고 측의 예비적(예비적으로 다른 원인을 주장하는 것) 주장인 피고들의 ‘표시광고법’ 위반에 대해선, 김 씨가 홍보관을 방문한 A씨에게 구두로 약속한 이상 피고들이 표시광고법에 따른 ‘표시’나 ‘광고’ 자체를 했다고 보기 어려워 이에 대해 표시광고법이 적용될 수 없다고 했다. 또 이 사건 분양 계약이 사기 또는 착오로 취소되거나 약정 해제권 행사로 해제됐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이를 전제로 한 원고의 예비적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 부장판사는 “피고들이 원고에게 약 1억 원 상당의 유상 옵션 품목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약정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를 이행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있는 이상, 이에 관한 피고들의 원고에 대한 기망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는 더욱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들이 원고에게 신의성실의 의무에 비춰 비난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의 고지를 했다거나, 피고들이 이 분양 계약의 중요한 사항을 위반해 (원고의)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지난 2012년 대법원의 “상품의 선전·광고에 다소의 과장이나 허위가 수반되는 것은 그것이 일반 상거래의 관행과 신의칙에 비춰 시인될 수 있는 한 기망성이 결여된다”는 판례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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