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최현석기자]
민족 명절인 추석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외환시장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외환딜러들은 올해가 네 달여 밖에 남겨두지 않았는데 아직 변변한 수익을 내지 못한데다 주위 동료들이 하나 둘 시장을 떠나고 있어 고향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 거라는 군요. 최현석기자가 최근 가열되고 있는 글로벌 통화전쟁 열기와 지속적인 당국개입으로 침울해진 시장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일부 딜러들이 혼자서 연간 수백억원 이익을 냈던 때도 있었죠. 그러나 관리제와 유사해진 요즘은 연간 12억~13억원 수준인 수수료 내기도 부담스러워 손이 나가지 않더군요. 저는 이미 전부터 다른 길을 찾고 있던 터라 후배들에게 길을 비켜주기는 했지만, 후배들조차 외환시장을 떠나려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10년 가까이 외환시장을 지켜오다 얼마 전 업무를 바꾼 한 전직 외환딜러가 내뱉은 한탄입니다.
요즘 외환시장에서는 소위 `주포(主砲)`로 불리는 주력 딜러들이 잇따라 거래에서 손을 떼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내부 인사이동에 따른 것이나,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거래의욕 감소와 투자 손실 등이 이들로 하여금 부서를 옮기도록 등 떠밀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주포가 바뀐 은행은 지난해 `올해의 딜러상`을 수상한 기업은행을 비롯해 신한, 산업, 우리은행 등입니다. 거래량이 많은 시중은행중 절반 정도가 바뀐 거죠.
딜러들은 이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외환시장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한켠에서는 당국에 대한 원망도 토로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이후 지속된 당국 개입으로 외환시장의 자율성을 잃은데다 일시적인 대규모 개입에 따라 손실을 입은 사례가 늘며 딜링룸을 떠나고있다는 겁니다.
환율이 하루종일 2~3원 가량 움직이며 거래 수수료 조차 건지기 어렵게된데다 당국 개입이 있는 날이면 7~8원 가량 급등락해 며칠간 힘겹게 벌어놓은 수익마저 고스란히 반납하게 되니 외환매매를 통한 이익 확보를 포기하게 된다는 거죠. 하루 10원 움직여봤자 변동성은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나, 개입이 이뤄지며 순간적으로 급등락을 유발하기 때문에 다치는 딜러들이 많은 실정입니다.
외국계은행 딜러들의 원성은 더욱 높습니다. 차익성 거래 비중이 70~80% 수준인 시중은행보다 더 큰데다 주 특기인 외환딜링을 버리고 다른 부서나 지점으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죠.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개회사 브로커로 변신하는 딜러들도 눈에 띄고 있습니다.
방향성없는 환율 정체는 기업담당(Corporate) 딜러들이나 스왑, 옵션 등 외환 파생상품쪽 딜러들까지 자리 유지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환율 움직임이 안정되니 기업들이 환리스크 관리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죠. 달러선물 거래도 예외일 수 없구요.
참고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동안 이자율관련 파생상품 거래는 전분기보다 20.5% 증가했으나, 통화선물과 장외 통화옵션 등 통화관련 파생상품 거래는 6.4% 줄었습니다. 환율 변동폭 축소에 따른 리스크 관리 수요 감소가 그 원인이며, 선물환 거래도 10% 감소했습니다.
앞서 딜러들은 당국개입에 따른 환율 변동성 위축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으나, 사실 더 큰 고민은 따로 있습니다.
세계 각국간 자국 통화 가치 하락 경쟁이 장기화될 것이란 염려가 그것입니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재무장관 회담에서 변동환율제와 시장개입 자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대부분 자국 통화 절상만큼은 용납치 않겠다는 속내를 갖고 있어 양보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딜러들은 최근 당국 개입이 경제 펀더멘털 악화 우려와 함께 강력하게 자국통화 절상을 막고 있는 일본 등에 대한 부담때문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경제상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 방향을 지향하며 대박을 노리는 일부때문에 당국에게는 투기성이 강해진 것으로 오인받는 경우도 있지만요.
다만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이고 기업들이 수출한 뒤 받은 달러 자금이 공급분으로 버티고 있어 제대로 상승시도를 할 수 없을 뿐입니다.
그럼 수급상황 역전이나 중국 위안화 절상에 따른 아시아 통화 가치 변화, 일본이나 미국의 자국통화 강세 선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전까지는 딜러들의 한숨이 계속 이어져야 할까요.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시장과 정책이 환율 수준과 흐름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대를 형성할 경우 해법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스스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자율적` 시장의 모습이 갖춰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력 딜러들의 은퇴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로 이어지며 외환시장이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당국과 시장참가자들이 네달동안 보여주지 못한 해(解)를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