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우위를 통해 냉전종식에 앞장섰고 `레이거노믹스`로 장기호황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군비확충과 과도한 감세정책으로 나라경제가 빚더미위에 올라 앉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 세이머 더스트는 늘어나는 나라빚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사람중 한명이었다. 그는 재정적자가 후세들에게 빚을 떠넘기는 행위라고 비판했고, 정부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국가부채의 심각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알릴지 고민하던 그는 `부채시계`라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국가부채가 어느 정도 빨리 늘어나고, 개인과 가계가 얼마 만큼의 빚을 지게 되는지를 시시각각 보여줌으로써 정부와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촉구하고자 했던 것. 당시 기술로는 이런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어려웠고, 그가 소망했던 부채시계는 레이건 임기 마지막 해인 1989년에 빛을 보게 됐다. 당시 국가부채는 2조7000억달러였다.
맨해튼의 타임스 광장에 내걸린 가로 8.9m, 세로 3.3m 조형물의 공식명칭은 `국가부채 시계`(The National Debt Clock, 사진)다. 최근 미국의 재정적자가 빠르게 늘어나자 지난주 미국 언론들은 앞으로 부채시계가 무용지물이 될 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부채시계 웹사이트(http://www.brillig.com/debt_clock)에 표시된 4일 오전 7시31분 현재(GMT 기준) 부채는 8조3815억720만2634.28달러. 웹에는 미국 국가부채가 지난해 9월말이후 매일 24억2000만달러씩 늘어나고 있으며 국민 1인당 부채는 2만8035.86달러라고 표시돼 있다.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2700만원을 조금 넘는다.
웹사이트에는 "걱정스럽다고? 그렇다면 의회와 백악관에다 얘기해!"(Concerned? Then tell Congress and the White House!)라는 문구도 적혀있다. 시민들이 의회와 백악관을 상대로 지출을 줄이고 건전재정에 나서도록 적극 촉구하라는 메시지다.
부시 행정부들어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 이유는 레이건 재임 당시와 비슷하다. 이라크 전쟁 등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감세정책으로 세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발행된 국채로 정부의 이자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재임시절 중단했던 30년물 장기 국채발행은 올들어 재개했다.
미국 정부재정은 클린턴 재임중 흑자로 바뀌었고, 부채시계를 소유한 더글라스 더스트(세이머 더스트의 아들)는 2000년 시계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세이머는 1995년 사망해 시계가 멈춰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부채시계 얘기를 한 것은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지난해말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전년보다 44조원(22%) 늘어난 248조원으로,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채무비중이 30%를 넘어섰다.
참여정부들어 3년간 부채가 111조원 늘었다. 부채증가율은 85.6%로 GDP 성장율의 4.8배에 달했다. 할 일도 많고, 쓸 데도 많다지만 나라빚이 이렇게 빨리 늘어나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국민 한 사람이 부담해야 할 나라 빚이 500만원을 넘는다. 미국의 5분의 1도 안된다고 안심해도 될까? 재정은 국가 신인도와도 직결된다.
앞으로 고령화 대책이나 양극화 해소 등으로 돈 쓸 곳은 널린 상황이다. 최근 논란에서 알 수 있듯 추가 세수확보는 험난하기만 하다. 이쯤되면 우리도 광화문이나 여의도 광장에 부채시계 하나쯤 세워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