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도 지킨 '경남은행 간판' 흔들리나(종합)

외환위기도 이겨낸 50년 '경남은행' 자존심
코로나19, 시중은행의 침투로 지방은행 위기 맞아
김지완 회장 '합병' 언급했다 노조 반발에 물러서
  • 등록 2020-11-12 오전 10:57:59

    수정 2020-11-12 오전 10:57:59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코로나19와 지역경제 성장 둔화라는 악재를 만난 경남은행, 무사히 살아남아 지방은행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경남은행’이란 이름은 경남은행 구성원들과 울산·마산·경남 지역민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각인돼 있다. 1970년 영업시작 이래 50년간 지역 은행으로서 존재했다는 자부심이다. 대형 시중은행들도 간판을 내리고 흡수·합병됐던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 때도 ‘경남은행’이라는 이름만큼은 살아남았다.

1970년 설립 당시 경남은행 모습 (경남은행 홈페이지)
거듭된 인수·매각에도 ‘경남은행’ 유지

물론 위기도 있었다. 우리금융에 합병됐던 2002년이다. 우리금융은 그때까지 인수한 은행들의 브랜드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다. 경남은행도 대상이었다. 경남은행 구성원들은 우리금융의 원뱅크 전략에 저항했고 우리금융은 포기했다.

2010년 우리금융 민영화와 더불어 매물로 나왔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숱한 시중은행들이 경남은행 인수를 고려했지만 경남은행 내부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지역성에 기반한 ‘경남은행’이라는 이름을 포기할 수 없었다.

BNK금융이 인수하기 전 유지했던 경남은행 브랜드 이미지
결국 부산은행을 품고 있던 BS금융이 나서 경남은행을 인수하게 된다. 같은 경남을 지역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BS금융과 경남은행 간 공감대가 맞았다.

2015년 BS금융은 경남은행 인수를 확정 지은 후 이름을 BNK로 바꿨다. 경남은행 이름 변경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후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투뱅크 전략은 BNK금융의 중추가 됐다.

2017년 BNK금융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김지완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취임 때부터 두 은행 간의 합병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도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투뱅크’ 전략을 명확히 했다.

코로나19 확산, 시중은행 침투 → 높아진 위기감

그러나 2020년 세계 경제를 급습한 코로나19로 BNK금융의 ‘투뱅크’ 전략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올해 1~3분기 BNK금융지주 당기순이익은 447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5% 감소했다. 지방금융지주는 물론 시중은행들과 비교해봐도 가파른 감소세다. 3분기 들어 다른 금융지주들은 회복세를 보였지만 BNK금융은 그러지 못했다.

자료 : 각사 실적 자료
더 큰 고민은 앞으로의 시장 상황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역에서도 시중은행들과 경쟁하게 됐다. 성장 한계에 부딪힌 시중은행들은 지방 영업망을 확충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필두로 한 핀테크 기업들은 은행들의 고유 영역을 무너뜨리고 있다. 지방은행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영진 입장에서는 경영 효율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가 그 부산-경남은행 통합설의 도화선이 됐다.

이런 고민은 지난달 21일 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식 기자간담회에서 드러났다. 김지완 BNK금융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은행 합병과 관련해서는 임기 중에 방향을 마련해 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면 두 은행의 전산을 통합해야 하는데 현행법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합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구성원의 동의가 우선”이라는 전제를 깔기는 했지만, ‘투뱅크 전략’을 명확히 했던 그간의 입장과는 뉘앙스가 달렸다.

BNK금융 관계자는 “전산통합을 언급한 것일 뿐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합병을 말한 건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김 회장이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합병을 추진하려는 속내는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적지 않았다.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사진= 이데일리DB)
경남은행 노조는 즉각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경남은행이라는 지방은행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강했다. 부산은행에 사실상 흡수통합된다는 점에서 거부감도 컸다.

경남은행 노조가 조직적인 투쟁 의사까지 내비치자 BNK금융은 빠른 속도로 수습에 들어갔다. 가뜩이나 올해 실적이 부진한데 노조의 반발은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 9일 노조가 공개한 입장문에 따르면 BNK금융지주는 경남은행의 브랜드 가치와 지역 사회에서의 중요성은 여전히 인정하고 있고, 지역사회와 경남은행 구성원이 동의하지 않은 통합은 지주 차원에서 검토하지 않고 향후에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경영진이 입장을 정리하고 물러선 것이다.

노조 역시 투쟁 의사를 접으면서 상황은 일단락 됐지만, 부산-경남은행의 통합론은 여전히 불씨가 살아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통합에 따른 효율성을 고려하면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합병 논의는 이후에 다시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하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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