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조선사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법정관리가 거론조차 안 됐던 이유 중 하나는 9조원 가까운 여신이 물려 있는 수출입은행이 부실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 때문이었다. 산업은행도 조선사의 구조조정이 광범위하게 일어날 경우 자본확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책은행의 부실화 문제는 향후 조선사 구조조정 방향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산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 적자..수은, 10% 턱걸이한 BIS비율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과 수은이 대우조선, STX조선, 성동조선 및 한진해운, 현대상선에 빌려준 여신 규모가 지난해말 현재 20조원에 달한다. 양사 자본금 합계의 78.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다만 이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빅 2 조선사는 제외한 여신액이라 이들까지 합할 경우 그 규모는 훨씬 커질 전망이다.
조선, 해운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산은, 수은의 부실 위험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일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가시화됐다.
자본 상황만 보면 수은은 더 심각하다. 산은은 그나마 BIS비율이 14.2%로 높은 편이지만 수은은 지난해 정부로부터 1조원의 현물출자를 받고도 10.0%에 불과했다. 수은의 부실채권 비율은 3.24%, 신용손실충당금은 1조원 정도로 산은보다는 낫지만, 대우조선, 성동조선이 부실화될 경우 부실채권 비율이 껑충 뛰면서 BIS비율이 곤두박질 칠 위험이 크다.
산은·수은, 해운사는 감당 가능..조선사가 문제
산은과 수은 모두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양대 해운사가 법정관리를 가더라도 충당금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대현 산은 부행장은 “현대상선에 대한 대손충당금은 이미 지난해 반영했고, 한진해운에 대한 충당금도 평균 1조원의 이익(충당금 제외)이 나기 때문에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은도 현대상선에는 여신이 아예 없고, 한진해운도 500억원 갖고 있어 충당금을 쌓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조선사다. 산은과 수은은 대우조선해양에만 총 13조원의 여신액이 물려 있다. 더구나 대우조선은 정상 여신으로 분류돼 있어 관련 충당금을 거의 쌓지 않았다. 산은은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가더라도 충당금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대우조선 등 빅3의 부실이 심화된다면 자본확충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이 부행장은 “조선업 구조조정이 빠르게 광범위하게 진행되거나 조선업황이 급속히 악화되면 자본확충이 필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꼬리가 몸통 흔들까..“국책銀 부실, 조선업 구조조정 방향과 별개”
국책은행의 부실화 문제가 향후 조선사 구조조정 방향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될 수 있단 것. 그로 인해 조선사 구조조정이 대마불사로 흘러 대형 조선사는 살리고 중소형 조선사 위주로 정리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다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책은행 부실과 조선업 구조조정의 방향은 서로 연결되지 않도록 별개로 보고 판단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사가 정리된다고 해도 문 닫기로 결정한 후 2~3년은 걸릴 것”이라며 “이전에 수주 받은 선박에 대한 공사를 중단하는 것보다 완공해 인도하는 것이 손실을 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3년에 걸쳐 RG 등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국책은행의 부실이 크게 번지진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