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이라는 망령이 정치권을 배회하고 있다."
이른바 인기영합주의로 풀이되는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상대방 정책이나 공약을 흠집낼 때 약방의 감초처럼 쓰인다. 내가 하면 국민을 위한 정책이고, 남이 하면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논리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당장 써먹기 좋을지는 모르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낯뜨겁기만 하다.
사례를 보자.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대 이슈로 부상한 무상급식이 그렇고, 세종시 수정문제가 그렇다. SSM(기업형 슈퍼마켓)문제가 그렇고 부자감세로 표현되는 세금 문제가 그렇다. 내가 하면 올바르고 합리적인 정책이고 남이 하면 앞뒤 대안없는 주장, 인기만을 의식한 정책 즉, 포퓰리즘이 된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정부와 한나라당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민여론이 무상급식 찬성쪽으로 기울어지자 한나라당은 화급히 전략을 바꿨다. "무상급식 대상 확대. 그리고 전면 무상 육아교육·보육 실시!" 그러면서 덧붙였다. "정부와 합의된 것은 아니고 아직까지 검토사항"이라고.
사법개혁도 마찬가지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과 MBC 피디수첩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르자 한나라당은 사법 개혁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반문이 이어졌다. "유죄 판결을 했다면 한나라당이 그토록 강력하게 사법개혁을 들고 나왔을까?"
`부자감세` 논란은 서로 다른 종류의 포퓰리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민주당 등 야당으로부터는 `지지계층만을 의식한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으로 공격당했다. 반면, 정반대편에서 감세를 주장하던 일부 집단들로부터는 `포퓰리즘 때문에 종부세 하나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쩔쩔맨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한나라당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억울함(?)이 없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포퓰리즘 공박과 말바꾸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은 어땠나. SSM(기업형수퍼마켓) 논란과 무상급식 논란에서 민주당도 자유롭지 못하다.
몇 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5년 한나라당 안상수 주성영 의원, 2006년 열린우리당 이상민 김영춘 의원,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등은 현재 SSM 규제안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대형마트 규제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놨다. 영세 상인들을 위한다는 명분도 비슷했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22일 포퓰리즘 논란에서 한 발짝 더 나갔다.
"선거철만 되면 인기를 얻기 위한 선심성 정책이 남발되고 있는데 국가재정을 생각하면 걱정되는 면이다. 선거와 포퓰리즘, 국가재정 문제가 함께 얽혀있는 상황인데 이것을 현실정치의 불가피한 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서 반드시 극복해야 될 과제라 생각한다."
야당의 무상급식 주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이 발언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의 아전인수격 논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집권 여당 대표에게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까지 해석된다면 그 진심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여론에 밀려 꺼내든 반전카드(무상보육)를 "실수였다" 사과하고, 당장 철회한다면 소모적인 포퓰리즘 언쟁의 종식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